일론 머스크 Elon Musk의 스페이스X가 높은 수익성을 자랑하는 인공위성 발사 산업에서 보잉-록히드 합작벤처인 ULA에 도전장을 던졌다. 기존의 강자 ULA는 과연 비용절감과 핵심기술 강화라는 쉽지 않은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까?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제프 베저스 Jeff Bezos의 블루 오리진 Blue Origin은 최근 몇 년간 우주 탐사에 대한 대중적 열광에 다시 불을 붙여왔다. 두 억만장자의 로켓 벤처기업은 원대한 목표(머스크는 화성 여행을 겨냥하고 있다)를 내세웠고, 수 차례 미션을 우주에서 수행하는 등 몇몇 괄목할 만한 성과도 이뤄냈다. 스페이스X는 로켓 발사 임무를 마친 추진체를 대서양의 해상 플랫폼에서 회수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더 빠르게, 더 싸게, 다시 쓸 수 있게’를 외치는 그들의 모습은 ’파괴적 비전‘의 정수라 할 만하다.
물론 파괴당하는 쪽이라면 상황이 훨씬 더 우울할 것이다. 하지만 토리 브루노 Tory Bruno의 안색에선 초조함을 엿볼 수 없었다. 그는 이름에 특색이 없어 금방 잊히기 쉬운 유나이티드 론치 얼라이언스 United Launch Alliance(ULA)라는 기업의 CEO다. 많은 이들에게 ULA라는 이름은 생소하겠지만, 그 모기업인 보잉과 록히드마틴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항공산업과 방위산업의 두 거인은 비전투용 로켓 발사를 목적으로 10년 전 50:50 합작벤처를 설립했다.
ULA는 온갖 종류의 상업 및 군사용 위성을 쏘아 올리는 로켓을 제작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06년 설립 이래 단 한 건의 사건사고도 없이 111개 화물을 우주로 보내왔다. 브루노는 이 놀라운 성과를 반복해서 언급했다. 신생 경쟁자인 스페이스X가 아직 접근하지 못한 기록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스페이스X와 블루 오리진은 장기적으로 ULA의 위협이다. 하지만 회사는 훨씬 시급한 단기적 문제에도 직면해있다. 주력상품인 아틀라스 V 로켓용 엔진의 물량 부족이 그것이다. ULA는 로켓과 함께 매출까지 곤두박질칠지도 모를 위기에 처해있다.
실제로 새로운 엔진 찾기는 ULA의 더 큰 과제에 있어서도 핵심 요소다. 그 과제는 바로 비용을 크게 낮추고 재사용도 할 수 있는 신형 로켓을 개발하는 것이다. 미 정부가 재정 긴축을 강화하는 이 시기에 스페이스X 같은 경쟁사들까지 동참하면서 저예산 신형 로켓 개발이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브루노는 “최대한 단순히 표현하면, 우리가 가진 ‘신뢰도’라는 강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비용은 반으로 줄여야 한다. 항공업계에서 이 정도 과제를 달성하려면 보통 10년은 걸린다. 하지만 우리에게 부여된 시간은 3년뿐이다”라고 말했다.
몇 년 전만 해도 ULA가 이런 문제를 겪게 될 것이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지난 4월까지만 해도 ULA는 건당 수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 국가안보 시스템의 위성발사 업무를 독점하면서 쏠쏠한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ULA의 독점이 붕괴된 사연에는 반전이 숨어 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존 매케인 상원의원, 워싱턴에서 크림 반도까지 여러 사건이 얽혀 있다.
일반인이 보기에 가장 놀라운 반전은 아마 다음 사실일 것이다: 지난 20년간 (대(對) 러시아 첩보위성을 포함해) 미국의 수많은 정부 위성은 다름아닌 러시아산 엔진이 추진하는 로켓에 실려 우주로 날아갔다. 이제 그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ULA는 벤처기업 블루 오리진이 개발 중인 신형 엔진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조금 덜 놀라운 반전이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브루노(54)는 록히드와 ULA에서 자신의 모든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ULA가 사멸 위기에 처했느냐는 질문에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을 정도로 냉철한 인물이었다. 그는 ULA가 새로운 환경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콜로라도 주 덴버 Denver 외곽에 위치한 ULA 본사 내 그의 사무실은 전형적인 CEO 집무실의 모습이었다. ULA 로켓 모형과 용을 물리치는 성 게오르기우스(St. Georgius)의 작은 조각상만큼은 예외였다(십자군에 대한 브루노의 관심은 잠시 후 소개하겠다). 사실, 보잉과 록히드 같은 거대 기업이 우주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도 믿기 어렵다.
하지만 파괴당하는 자의 운명은 원래 그런 법이다. 지금 ULA는 실존적 질문에 직면해있다. ‘브루노가 과연 용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인가?’. 그도 인정했듯이, 신형 엔진을 장착하고 비용을 크게 낮춘 신형 로켓을 3년 안에 출시하는 건 굉장히 힘든 과제다. 항공 컨설턴트사 틸 그룹 Teal Group의 마르코 카세레스 Marco Caceres 우주연구부문 디렉터는 “지난 25년간 로켓 산업을 지켜본 입장에서 보면 극도로 야심 찬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내게 내기를 하라면 ’못 한다‘에 걸겠다. 하지만 ULA가 현 상황의 중대성을 인지한 것 같은데 이 점이 굉장히 중요하다.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ULA는 머지 않아 업계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보잉, 록히드, ULA와 미국 우주 및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 간의 관계는 과장할 여지가 별로 없을 정도로 긴밀하다. 예컨대 달 탐사선 아폴로 11호를 대기권 밖으로 실어 나른 새턴V 로켓을 제작한 제작사 3곳 중 하나도 보잉이었다. 보잉은 훗날 나머지 두 회사를 인수했다. 머큐리계획 (*역주: 미국 최초의 유인우주비행 계획) 부터 미닛맨 Minuteman 핵미사일까지, 보잉과 록히드(및 그들이 인수한 수많은 회사들)는 미국 우주 로켓 역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수십 년 세월을 거치면서 민간기업의 역할은 점점 커져갔다. 과거에는 보잉이나 록히드가 로켓을 제작하면, 미 공군이나 미 항공우주국(NASA)이 발사를 거의 전담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지난 1995년 ‘진보한 소모성 우주발사체(Evolved Expendable Launch Vehicle · EELV)’라는 복잡한 이름의 공군 프로그램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발전이 이뤄지면서 정부가 민간 발사서비스업체에게 맡기는 부분이 더욱 늘어났다. 이젠 기업이 로켓을 제작할 뿐만 아니라, 발사를 감독하고 미션까지 수행하고 있다.
ULA(회사 설립 전에는 보잉과 록히드)는 대형 로켓엔진을 오랫동안 외부로부터 공급받아왔다. 로켓 제작의 목적은 내장 튜브를 꽉 채운 다량의 연료를 통해 위성을 우주로 발사하는 것이다. 엔진은 각종 공학기술·소재·설계의 복잡한 집합체인 로켓의 일부분일 뿐이다. 대형 연료 로켓을 기초 단계부터 개발하는 데에는 약 10억 달러가 소요된다. 수십 년간 업계 내 인수합병이 진행된 결과, 이런 기술을 갖춘 업체가 극소수로 압축됐다.
우주 및 방위 계약에서 비용은 항상 중요한 문제다. 1995년 EELV가 등장한 한 가지 원인도 로켓 비용을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경쟁도 도입됐다. 미 국방부에 최소 2종의 로켓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돼 한쪽에 기술적 문제가 생길 경우 대체를 할 수 있다는 것도 경쟁의 장점이었다.
미국 로켓들이 러시아산 엔진을 사용하게 된 한 가지 이유도 비용 절감 때문이었다. 90년대 초중반, 냉전이 끝나고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다. 미국의 원가절감 계획과 기존 고객을 잃은 러시아 측의 신규 시장 모색이 맞물리면서, 과거라면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났다. 러시아의 NPO 에네르고마시 NPO Energomash사가 제작한 RD-180 1단계 로켓엔진의 구매를 미국 국방부가 승인한 것이었다. 러시아산 로켓 추진 기술은 신뢰성이 있고, 검증도 됐으며,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가격도 매력적이었다. RD-180은 먼저 록히드의 아틀라스III에, 이후에는 아틀라스V에 탑재됐다.
비용 50% 절감은 현실화되지 않았지만(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 문제는 꾸준히 제기됐다. 10년 후인 2005년, 보잉과 록히드는 각자의 사업부를 합병해 한 조직으로 통합하기로 결정했다(델타와 아틀라스 로켓은 별도로 유지했다). 제작사가 단일화되면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듬해 ULA가 공식적으로 탄생했다.
바로 그 시점에서 억만장자 기업인 두 사람이 로켓 벤처기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 Tesla로 많이 잘 알려진 일론 머스크가 2002년 스페이스X를 설립했다.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는 그보다 2년 앞선 2000년, 소리 소문 없이 블루 오리진을 창립했다. 블루 오리진의 존재는 2003년에야 일반에 알려졌다.
사람들은 초창기 두 기업을 억만장자의 값비싼 취미생활 내지, 파산으로 가는 지름길 정도로 여겨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창업 목적은 부자들이 우주에서 벌이는 ‘요트 크기 경쟁’ 같은 것이 아니었다. 머스크는 화성에 인간 거주지를 건설해 인류를 ‘다행성 종족’으로 만드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고 밝혔다. 베저스는 언론 노출이 비교적 적었지만, 꿈은 머스크 못지 않게 웅대했다. 그는 지난 4월 콜로라도 주 스프링스 Colorado Springs에서 열린 스페이스 심포지엄에서 “우주가 수백만 명의 일터이자 삶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가 우주를 개척하는 하나의 문명 자체가 되길 바란다(스페이스X 측은 본 기사를 위한 인터뷰에는 응했지만, 발언의 직접 인용은 거절했다. 블루 오리진의 대변인은 포춘의 마감시한에 맞춰 인터뷰가 불가능하다는 뜻을 전해왔다).
현재 두 회사 모두는 사람과 물건을 우주로 나르는 비용을 낮춰 우주산업의 수익성과 접근성을 높이려 하고 있다. 블루 오리진은 탄도비행 우주선 뉴 셰퍼드 New Shepard를 통해 우주관광 사업을 개척하려 한다. 우주여행이 훨씬 더 활성화되면, 이론상으로는 당연히 수익창출이 가능해진다. 스페이스X는 팰컨 Falcon 로켓을 활용한 지구 궤도 및 그 너머까지 도달하는 서비스를 저렴한 비용으로 민간에 제공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머스크는 발사비용 감축이 스페이스X의 핵심 사업 미션이라고 강조했다. 사업적인 장점 외에도 우주 기술의 혁신을 유도하고 새로운 사업모델을 창출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 팰컨9 로켓 비행 이후, 머스크는 취재진에게 “쓴 돈보다 더 많이 벌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수익성 극대화가 근본적인 목적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스페이스X는 발사 비용의 경제성 측면에서 ULA를 압도한다. 스페이스X의 팰컨9 1회 발사비용은 6,200만 달러인 반면, ULA가 아틀라스V 발사의 ‘권장 소비자가’로 제시한 비용은 1억 6,400만~3억 5,000만 달러 선이다(특정 발사의 계약 조건은 통상적으로 공개하지 않는다). 기존 업체보다 저렴한 가격은 로켓공학이라기보단 영리한 경영의 결과였다. 스페이스X는 로켓 설계 및 제작에 최신 기술을 적용했고, 완벽한 수직계열화도 이뤄냈다. ULA와 달리 스페이스X는 엔진을 포함한 모든 핵심 부품을 자체 제작하고 있다. 블루 오리진도 독자적으로 엔진을 만들고 있다.
ULA의 운은 2014년부터 기울기 시작했다. 그 해 3월 우크라이나 내전을 틈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땅이었던 크림 반도를 점령·합병하면서 미-러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 4월에는 스페이스X가 군사용 로켓 발사 계약 입찰권을 놓고 미 공군을 제소했다.
2014년 5월에는 러시아의 드미트리 로고진 Dmitry Rogozin 부총리가 미국 군사위성 발사 용도의 RD-180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로고진은 러시아 국방 및 우주산업을 총괄하는 인물로, 크림 반도 병합 이후 미국의 1차 제재대상에 포함됐다). 이로 인해 미 국방부의 우주 접근성이 위험에 처했고, 미국의 핵심 안보기술을 러시아산 장비에 의존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분명해졌다.
로고진이 위협을 실행으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러시아산 엔진은 정치적인 민감 사안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우선 의회가 개입했다. 여름이 되자 미국 정부는 러시아산 엔진에서 자립하기 위한 방책을 찾기 시작했다. 의회도 ULA가 이미 주문한 5개 외에 RD-180을 추가로 수입할 수 없도록 제한조치를 취했다(이후 물량 한도가 높아졌다.)
2015년 1월 ULA는 또 한 번 타격을 입었다. 스페이스X의 소송에 직면한 미 공군이 일부 발사체 계약을 공개 경쟁으로 전환하는 데 동의한 것이었다. 이 무렵 스페이스X는 로켓 발사체의 해상 플랫폼 착륙 시도를 통해 언론의 주목을 받아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고 있었다. 해상 착륙은 스페이스X의 장기 목표인 1단계 발사체 재사용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고가의 1단계 발사체를 재사용하면 발사 비용은 더욱 낮아질 터였다.
이 시점부터 ULA도 대응을 시작했다. 2014년 8월, 보잉과 록히드는 당시 록히드의 전략 및 미사일 방어시스템 사업부 담당 부사장이었던 브루노를 ULA의 신임 CEO로 임명했다. 회사의 새로운 현실 적응을 도울 인물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브루노는 ULA의 임원진을 30% 감축하는 등 비용 절감에 돌입했다. 그는 공급망 비용을 36% 줄였고(여기저기 ’군살‘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로켓 제작 및 배송에 걸리는 시간도 반으로 줄였다. 그는 저렴하고 일부 재사용이 가능한 신형 로켓을 개발, 아틀라스V와 델타IV를 대체한다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벌컨 Vulcan이라 명명된 이 프로젝트를 위해, ULA는 회사 설립 후 처음으로 로켓을 기초부터 제작하고 있다. ULA의 ‘일부 재사용’ 결정만 봐도, 스페이스X가 발사업계의 판도를 얼마나 바꿔 놓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ULA는 여전히 ‘신뢰도’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있다. “우리의 목적은 가격적으로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니다.” 브루노는 말한다. “바로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는 지난 9월 스페이스X 로켓이 2억 달러짜리 위성(페이스북이 아프리카 인터넷 보급용으로 사용할 예정이었다)을 탑재한 채 폭발했던 사건이나, 작년 6월 팰컨9가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가던 중 폭발했던 사건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까진없었다.
브루노는 ULA가 여전히 새 환경에 적응 중임을 인정했다. 10년 전 회사가 설립됐을 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한참 진행 중이었다. 상당수의 하드웨어를 궤도에 신속히 올려놓길 원했던 공군은 성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비용이 핵심 가치로 부각되면서 ULA는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 브루노는 “우리가 그 때까지 기울였던 모든 노력의 의미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외부에서 본 ULA는 새로운 경쟁에 뛰어드는 데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했다. 스페이스X가 첫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된 2015년, ULA는 글로벌 포지셔닝 시스템 III 위성 발사에 입찰하지 않았다. ULA는 불참 이유로 신뢰성이나 과거 실적보단 가격을 중시하는 심사 기준, 사용 가능한 RD-180 엔진이 없다는 점 두 가지를 꼽았다. 자연히 계약은 스페이스X로 돌아갔고, ULA의 방위 산업 독점도 깨지고 말았다.
ULA가 입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의회의 주요 인물 몇몇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상원 군사위원회 의장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던 매케인 상원의원은 RD- 180 수입금지를 적극 지지했다. 그는 애슈턴 카터 Ashton Carter 국방장관에게 ULA의 변명이 ‘의심스럽고’ ‘인위적(manufactured)’인 것 같다는 내용의 서한을 발송하기도 했다. 매케인은 ‘ULA가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꼼수를 쓰고 있다. RD-180 사용을 제한하는 의회 결정을 완화해야 할 필요성을 억지로 만들어 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ULA는 워싱턴 정가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올해 들어 나름 승리 거둘 수 있었다. ‘군사용으로 RD-180 엔진을 최대 18개까지 추가 사용할 수 있다’는 의회 승인을 받아낸 것이었다. 이를 통해 2020년대 초까지 사업을 지속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 이후는 불투명한 상황이다(매케인은 2022년부터 국가안보 목적의 우주 발사에서 RD-180 사용을 금지한다는 양보를 얻어냈다).
ULA의 이야기는 정부 계약업체가 흔히 맞닥뜨리는 운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회사는 초거대 항공·방위업체 두 곳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수십 년간 두 회사는 정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활용해 미 정부 발사서비스 계약을 독점했고, 그 대가로 천문학적 세금을 가져갔다. 독점권에 안주한 ULA에는 비용을 낮추거나 (재사용 로켓 등) 혁신적 신제품을 개발해야 할 동기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장 상황 변화 때문에 회사 전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다.
브루노는 이 같은 상황을 듣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자신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ULA가 게으른 독점사업자든 단순히 새로운 경쟁에 직면한 기업이든 이젠 변신을 하지 않으면 뒤쳐질 처지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관심사인 성전기사단의 역사를 인용, 전통적인 ‘적응 아니면 몰락’ 시나리오를 빗대 설명했다. 성전기사단은 십자군 전쟁 때 성스러운 땅을 찾아 진군했던 것으로 유명한 12세기 유럽의 기사단인데, 브루노는 그 역사에 정통한 전문가다. 성전기사단에 대한 책만(‘성전 주식회사 Templar Incorporated’ 포함) 두 권을 저술했을 정도다. 책에서 그는 은행, 선박, 증권업을 광범위하게 경영한 ‘서구 최초의 다국적 복합기업’ 성전기사단으로부터 현대인이 얻을 수 있는 경영상의 교훈을 탐색했다. 그는 “성전기사단은 187년간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최대 기업이었다. 그런데 약 7년 만에 완전히 파멸했고, CEO는 말 그대로 화형을 당했다.”
무엇이 변해 그런 결말을 맺었을까? 브루노는 변한 건 성전기사단이 아니라 외부 환경이었다고 설명한다. 13세기 말 유럽 기독교 세계가 예루살렘 기반을 완전히 잃으면서, 성전기사단의 중심 미션이 사라졌다. 성전을 위해 태어난 군사기업이 싸울 성전을 잃은 것이었다. 그는 “ULA는 성전기사단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 있다. 바로 변화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ULA는 3년 내로 새로운 로켓과 엔진을 개발하고, 상당한 경쟁력도 갖출 것이다. 그러나 그건 만만치 않은 일이기도 하다.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화형을 당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 후 활짝 웃었다.
9월의 어느 흐린 금요일, ULA의 CEO 집무실에서 벌컨 로켓을 논의하는 임원 회의가 소집됐다. 의제는 소재였는데, 1단계 발사체를 기계 가공 알루미늄과 (비교적 낯선 소재인) 경량 스테인리스강 중 어느 쪽으로 할 것인지가 토픽이었다. 그곳에서 아틀라스V와 델타IV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가공 알루미늄을 사용한다는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스테인리스강은 설계상 위험이 더 크고, 엔진을 변경해야 한다. ULA의 모든 것이 바로 그 엔진에 달려 있다.
블루 오리진이 개발한 엔진 BE-4는 액화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신형 모델이다. ULA로선 블루 오리진과의 협력이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벌컨의 시험운행을 개시해야 하는 2019년까지 개발을 할 수 있는 미국 내 유일한 로켓엔진이기 때문이었다. ULA의 벌컨 개발을 총괄하는 마크 펠러 Mark Peller 엔지니어링 담당 부사장은 “시장에 공급하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경쟁은 계속 진일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ULA가 “경쟁력 향상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ULA는 2017년 말까지 전체 인력의 25%(최대 875명)를 감축할 예정이다. 델타II 로켓은 내년에, 규모가 더 큰 델타IV 로켓은 2018년까지 단계적으로 퇴출시키는 등 사업 포트폴리오도 축소할 예정이다. 5개 발사대 중 3개를 폐쇄해 동부와 서부 해안에 발사장을 하나씩만 유지할 계획이다.
이 모든 행동의 목적은 벌컨의 가격경쟁력 극대화라 할 수 있다. 브루노는 “이미 입찰가를 낮췄고, 2017년 말까진 발사 비용을 1억 달러 이하로 내릴 것”이라며 “벌컨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라고 덧붙였다
로켓과 엔진은 모두 아직 시험을 진행하기 전이다. 신뢰도가 최대 무기인 회사에겐 큰 미지수로 작용하고 있다. 블루 오리진은 BE-4와 같은 크기와 종류의 엔진을 만든 경험이 없다.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충분하다는 얘기다. 전면적 정지연소 테스트(static fires test) (*역주: 최종 리허설 단계에서 엔진을 최대출력으로 실제 점화하는 시험) 는 올해 말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이미 2017년으로 미뤄졌다는 보도도 있었다. 오류가 발생할 경우 ULA에겐 바로잡을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다는 얘기다. 브루노는 장창을 손에 들고 말 안장에 올라탔다. 하지만 눈 앞에 존재하는 용은 여전히 거대하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Clay Dillow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