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직장인이라면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해야만 할 것만 같은 ‘숙제’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무한경쟁 시대니까요)
가슴 한 구석에 먼지처럼 쌓여 있는 ‘찜찜함’의 근원, 바로 자.기.계.발 입니다!!!!!
“나도 대학원이나 가볼까?”
(대학원이 무슨 인증서나 자격증도 아닌데 이렇게 쉽게 툭 튀어나오다니ㅇㅅ…더 충격적인 건 ‘대학원이나 가볼까’ 내뱉은 말이 현실이 되기 직전이라는 사실입니다만...)
불과 9개월 전 원서를 쓸 때도, 추천서를 받으려 아는 교수님께 부탁했을 때도, 심지어 면접을 볼 때도 반은 ‘진짜 되겠어?’ 반신반의하며
‘우선 붙고 난 후에 생각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책 없이 시작한 일이 정말 대책 없이 커졌습니다.ㅠㅠㅠ
지난 달 ‘합격’ 통보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제 머리는 쥐가 나기 일보 직전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대학원 진학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본 적이 없습니다.
‘대학원이나 갈까?’라는 어이없는 프로젝트의 시작은 돌이켜 생각해보면 단순한 초조함과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직장 선배, 동기 심지어 후배들까지 ‘석사 학위’를 무슨 자격증 따듯 (일단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느니 내 눈에는 쉬워 보이기도 했고) 하나씩 갖춰가는 것을 목격하자 이대로 가면 나만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초조하게 만들었던 것 같네요.(이 무슨 고해성사와도 같은 시츄에이션인가 ㅠㅠ)
제 주변 직장 동료 10명 중 2명은 대학원에 다니고 있거나 이미 학위를 취득했거든요.
또 1~2명은 앞으로 진학할 계획이 있다고 합니다.
(주변인에 국한된 통계이긴 하지만) 무려 30~40%가 석사학위를 땄거나 딸 계획이 있다는 거죠. (비율로 보니 엄청나지 않나요?)
게다가 이미 석사 학위를 ‘수집’한 선배들은 하나같이 “일단 2년은 걸리니까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시작하는 게 좋다”는 조언을 늘어 놓았죠.
이런 저런 이유로 제 ‘대학원 진학’ 프로젝트는 엉겁결에 시작된 셈입니다.
그리고 운이 억세게 좋았던(?) 저는 합격통보를 받은 상황입니다.
(직장인 대학원생은 학교의 ‘돈줄’이자 ‘봉’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어쨌든 떨어지는 사람도 있으니 운이 좋았다 치겠습니다)
이렇게 떨떠름하고 미적지근한 즐거움을 안겨준 합격은 제 인생에서 난생 처음입니다.
신입생 등록 마감기한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지금, 저는 시작이야 어찌 되었든 나름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2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두고 득실을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주제는 ‘대학원 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합리적인 결정을 위해 일단 가야 할 이유와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리해 보겠습니다.
■ 대학원에 가야 할 이유
- 나름 전문성 확보
- 가방 끈이 길어진다
- 혹시 모를 몸값 상승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직 등의 경우)
- 자기만족
- 회사에서 80% 학비 지원(놓치면 손해라는 느낌적 느낌)
■ 대학원에 가지 말아야 할 이유
- 생각보다 전문성이 크게 향상되지 않을 가능성
- 가방 끈 길어서 어디에 쓰나
- 몸값이 확실히 오른다는 보장은 없음
- 자기만족이라기엔 시간과 돈이 아까움
- 결국 20%는 내가 내야 함
(잉? 쓰다 보니 가야 할 이유가 가지 말아야 할 이유에 의해 다 상쇄되는 것 같네요)
역시 뚜렷한 목표나 계획 없이 시작한 일인지라,
정리하면 할수록 2년의 시간과 20%의 학비를 투자해 손에 쥐게 될 그 석사 종이 한 장이 내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는 회의감이 강하게 들려는 찰나 (그래도 나란 사람 이상한 데 집착하는 사람...)
‘안 가는 게 낫겠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수록 이상하게 가야 할 이유를 힘겹게 짜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학원에 가려다 가지 않았을 때 0.00001%의 확률로 일어나게 될 지도 모를 일’에 대해 써봅니다. (네, 저는 참 구차한 사람이군요...ㅇㅈ)
■ 대학원 가려다 안 갔을 때 0.00001%의 확률로 일어나게 될 지도 모를 일
- 자괴감(대학원에 안 간다고 2년 동안 뭔가 엄청난 일을 할 것 같지도 않다는 느낌이 현실이 될 것 같은 느낌, 이러려고 대학원 안 갔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 회사가 제공하는 복지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모든 조건이 같다면 석사학위자가 우대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역시 동료들과 비교했을 때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대체 얼마를 써야 하는 것인가 계산해보니 (학기당 학비 800만원으로 계산시 160만원*4학기=640만원) 학비만 640만원이네요.
(2년이라는 시간의 기회비용은 굳이 더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다시 쓰고 정리할수록 대학원에 가야 할 그럴듯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했다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하는 미련이 남으니 말입니다.
대학원 진학의 또 다른 걸림돌로 작용하던 졸업 논문이 제 발목을 잡지 못한다는 사실이 또 저를 질척거리게 만듭니다.
수개월 전 지원서 작성 때문에 통화했던 과 사무실 조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졸업 논문은 안 쓰셔도 돼요. 수업을 더 듣는다거나 일정 요건을 충족하시면 논문 대신 대체할 수 있는 게 있거든요”
종합시험이나 뭐 수업을 더 들으면 된다고 하더군요.
논문 쓰느라 밤을 샐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수업 듣는 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테지만 논문 쓰는 것보다는 수월하지 않을까요?
아, 그러고 보니 대학원의 장점이 또 하나 있네요.
- 네트워킹(회사에서는 만나지 못하는 다양한 인맥을 쌓을 흔치 않은 기회가 될지도)
물론 그 인맥은 생각보다 훌륭하지 않을 수도 제게 그렇게 쓸모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쉽게 떨쳐낼 수 없는 엄청난 불안감이 ‘결론’을 내리기 힘들게 만듭니다.
저처럼 대책 없이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입학을 앞둔 직장인이라고 할지라도 석사학위가 필요할까요?
자기계발에 대한 중압감에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석사학위는 나름 쓸모가 있는 건 아닐까요?
‘대학원, 계륵일까 아닐까’ 스스로 내려야 하는 결정에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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