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 속살을 드러낸 젊은 여성들이 숲 속으로 달아난다. 춤추듯 휘청이는 몸 너머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미국 사진작가 라이언 맥긴리의 작품 ‘피퍼스(Peepers)’. 탱탱하고 부드러운 살결이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윌리엄 부게로(1825~1905)의 ‘님프와 사튀르’ 속 님프를 불러낸다. 젊음에 둘러싸인 채 좋으면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반인반수 사튀르의 심정이 잠시 관객의 마음에 깃들다 떠난다. 쫓을수록 달아나는 환영같은 존재 ‘님프’는 젊음 그 자체이기에 맥긴리가 포착한 젊은이들은 님프를 닮았다. 작가는 청춘이 겪는 갈등의 해방과 쾌락적 자유를 몽환적 이미지로 담아냈고 2003년 당시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개인전을 연 작가가 됐다.
2030세대들이 가장 선호하는 문화공간 중 하나인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관장 이해욱)이 젊음을 주제로 한 전시 ‘유스(YOUTH)-청춘의 열병, 그 못다 한 이야기’를 5월28일까지 이어간다. 라이언 맥긴리를 필두로 젊은이들의 ‘유스컬처(Youth Culture)’를 대변하는 국내외 작가 28명의 사진·그래픽·영상 등 240여 점을 모았다. 전시의 도입부는 반항·일탈·좌절 등 젊음의 음울함을 파고들었고, 후반부는 그 순수와 열정을 눈부시게 드러낸다.
공사장의 임시 철골 구조물과 철조망 등으로 벽을 대신한 전시장은 어둡고 시끄러운 클럽을 방불케 한다. 꾸미지 않은 청춘의 민낯을 보여주며 유스컬처의 대변인이 된 영화감독 겸 사진작가 래리 클락의 작품에서는 담배냄새가 날 것만 같다. 10대 청소년의 일상을 기록한 작품인데도 말이다. 27세에 요절한 대쉬 스노우는 쾌락을 좇는 젊은이를 포착했다. 슬프도록 아련하다. ‘니 새끼 니나 이쁘지’ ‘내가 니를 어찌 키웠는데’ 등 문구를 적은 이광기의 설치작품이 중간중간에서 헛웃음을 짓게 한다.
한 층 위는 지옥과 천당만큼이나 대조적이다. 아름다운 청춘의 가슴 떨리는 순간들이 펼쳐진다. 맥긴리가 촬영한 400여명 청춘의 나체 사진이 흰 벽면을 채워 시선을 압도한다. 벗은 몸이 야하지도 추하지도 않은 이유 또한 젊음이기 때문이리라. 파올로 라엘리, 앤드류 리먼 등 자연스럽게 포착한 남녀의 일상은 사랑의 설렘과 이별의 아픔까지 두루 더듬게 한다. 수영장 물결이 벗은 몸을 더 빛나게 하는 디아나 템플턴의 사진도 인상적이다.
더이상 청춘이란 푸른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이 시대 고달픈 젊은이들을 향해 미술관은 ‘열병’이란 부제를 붙여줬다. 죽을만큼 아프지만 앓고나면 강해지는 열병 말이다. 누드와 일탈을 다룬 작품이 많지만 관람연령 제한이 없다.
통의동 대림미술관의 분관 격으로 지난 2015년 12월 개관한 디뮤지엄은 적극적인 SNS마케팅 등으로 트렌드에 민감한 멋쟁이들의 성지(聖地)로 급부상했고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지 않음에도 지난해만 42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070)5097-0020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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