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깊숙이 들어가야만, 아니 설악에 머물러 사는 이에게나 보일 법한 겹겹의 기암괴석들이다. 휘영청 뜬 보름달이 살짝살짝 바위틈 녹색 빛 자연의 속살을 비춘다. ‘설악산의 화가’로 유명한 원로작가 김종학(80)의 ‘산’이다. 1979년 늦가을, 미국에서 활동하던 작가는 돌연 귀국해 설악산 칩거를 시작했다. “죽고 싶을 만큼 쓸쓸했고 견디기 힘들었다”는 그는 자연의 품에서 위안을 얻었고 추운 겨울을 견뎠다. 봄이 오자 산에 핀 야생화를 보며 색에 눈을 떴고, 그때부터 꽃을 그렸다. 김종학의 ‘꽃’은 마치 동양화의 시점처럼 시공을 초월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그의 ‘산’은 겸재 정선이 ‘관동명승첩’에 그렸던 진경산수처럼 사생에 사색을 더해, 추상과 구상의 절묘한 조화를 그려낸다. 관객이 그림으로 마주하는 풍경은 자연이 작가의 마음을 치고 지난 울림, 메아리 정도로 봄 직하다. 설악산으로 들어가기 전 김종학은 추상작업으로 유명했다는 점을 되새긴다면 그림을 이해하기 한결 수월하다. 작품은 오는 26일까지 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에서 열리는 ‘평창비엔날레&강릉신날레’ 중 강원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원로작가 10명의 작품을 모은 특별전 ‘높새바람:강원의 맥’에서 직접 볼 수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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