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던 지난 2014년. 에너지원 대부분을 해외에서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수십조원에 이르는 경제적인 부담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라도 ‘에너지 독립’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유가가 거의 110달러로 오르며 정점을 찍었던 그해 7월 1,000가구를 대상으로 “화석연료를 신재생에너지로 바꾸면 얼마의 전기료를 더 부담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각 가정은 2013년 고유가로 전기요금이 두 차례나 인상된 데도 불구하고 신재생 전기를 쓰기 위해 월평균 3,456원을 내겠다고 답했다. 원전 대신 신재생 발전에서 나온 전기를 쓸 때는 월 4,554원을 더 부담하겠다고 했다. 당시 전기를 쓰는 가구 수(약 1,846만)를 고려하면 연간 1조원이 넘는 돈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땠을까. 그로부터 2년 후 여름철 폭염으로 에어컨 사용량이 증가하며 전체 전기요금이 뛰자 사람들은 돌변했다. 전기누진제 개편에 대한 요구가 거셌고 6단계·11.7배의 누진제는 3단계·3배수로 조정됐다. 이런 결과로 한국전력은 연간 1조원의 수익이 감소했다. 더욱이 신재생에너지로 바꿀 경우 요금은 더 올라간다. 반발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장기 전력공급 계획을 만드는 해당 부처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 유력 대권주자들이 ‘탈(脫)핵’을 선언하고 있다. 전체 전기생산의 30%를 차지하는 원자력발전을 줄이고 대안으로 신재생 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발전단가(2015년 기준)는 kwh당 158원으로 천연가스(126원)나 원자력(63원)보다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신재생에너지를 확산하기 위한 기초인 전기요금에 대한 합의조차 없다.
넘어야 할 현실적인 장벽은 전기요금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거부 현상인 ‘그린포비아’의 확산은 더 심각하다. 국내 최대 아산만 조력발전 건설이 무산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동서발전과 대우건설은 2009년부터 약 1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해 28.5㎿급 해양에너지 발전소를 지으려 했다. 사업 계획이 발표되자 아산만을 함께 보유한 아산·당진시와 경기 평택시의 주민들이 환경파괴와 어획량 감소 등을 들어 사업에 반대했고 결국 2011년 해당 사업이 무산됐다. 장흥 육상풍력, 고창 태양광, 함양 태양광, 영월 풍력 등 신재생발전 프로젝트들은 주민 반대로 대부분 좌초하고 있다.
김남일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실장은 “원전 줄이기와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솔루션은 같이 나오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정부 부처들도 엇박자를 내며 과감한 규제개혁은 먼 산이다. 해상풍력 발전 하나를 짓는데도 외교부(유엔해양법협약)와 국방부(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문화체육관광부(문화재보호법), 해양수산부(수산업법, 해양환경관리법, 공유수면 및 매립에 관한 법률), 환경부(환경정책기본법·환경영향평가법), 국토교통부(항공법) 등 온 정부부처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 지자체마다 도로·마을과 신재생 발전소 간 거리는 100~1,000m로 천차만별이다. 친환경으로 분류되는 신재생 발전도 원전과 석탄 등 화석연료 발전과 같은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적용받는다. 법에 따라 신재생 발전도 발전기 5㎞ 이내의 읍면동에 지원사업을 해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대형 에너지업체 고위 임원은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새만금 같은 곳에 원전 1기에 해당하는 1GW 규모의 태양광 발전을 랜드마크 형식으로 지어야 기업들도 참여하고 이를 발판으로 해외에도 나갈 수 있다”며 “하지만 산에 하려고 나무를 깎으면 자연훼손, 바다 간척지에 하려면 염전 훼손 등 각종 민원 때문에 사업을 진행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 신재생 발전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세종=구경우·강광우 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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