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시인을 흠모한 것으로 잘 알려진 김영한 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성북동 대원각을 ‘무소유’의 법정스님에게 시주했고 길상사가 됐다. 그 길상사가 마주 보이는 언덕에 20평 남짓(76㎡)한 땅을 산 사람이 ‘작은 집’을 짓고싶어 했다. 골목길 경사로에 모퉁이집인데다 2층 이상 불가능한 곳이라 연면적은 47㎡가 안 됐다. 의뢰를 받은 ‘가온건축’의 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 소장은 머리를 싸맸다. 다락방을 올려 2.5층으로 짓기로 하고 1층은 주방과 거실, 2층은 침실, 다락은 서재로 결정했다. 좁으면 높이라도 올려야 하건만 상한선으로 택한 다락방은 지붕 아래 벽을 없애고 난간을 달아 한옥 누마루처럼 ‘내부도 아니고 외부도 아닌’ 공간으로 집의 숨통을 틔웠다. 수납은 계단 쪽 벽면을 활용했다. 회색 고벽돌 타일을 붙인 차분한 느낌의 외벽은 사실 두께를 조금이라도 줄여 내부 면적을 늘리기 위한 복안이었다. 버려졌던 담장 옆 공터에 구멍 뚫린 블록을 쌓아 대나무를 꽂고 꽃을 심었더니 정원이 만들어졌고 ‘들꽃집’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뉴욕발 대규모 금융위기를 겪은 미국에서는 한동안 ‘작은 집 운동’이 일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로 사람들이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 이상의 집을 가지는 것을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터 하나를 공유해 두 채의 집을 짓는 ‘땅콩집’이 유행하더니 요즘 ‘작은 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단순한 삶을 추구하며 버림의 묘수, 비움의 미학을 강조한 ‘미니멀리즘’ 생활방식의 확산과도 무관하지 않다. ‘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의 저자들은 ‘작은 집’을 화두로 꺼내며 “작아도 작지 않은 집, 작지만 그 안에 큰마음이 담긴 집”을 이야기 한다. 이들은 “키에르케고르가 이야기한 ‘죽음에 이르는 병’이 불안이라면 현실의 우리나라에 죽음에 이르는 병은 물질에 대한 불안, 혹은 집에 대한 불안”이라며 “주택의 공급과잉과 시장의 왜곡으로 인한 문제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동안 미친 듯이 몰두했던 집에 대한 잘못된 욕망을 반성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책은 저자들이 지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 작은 집 9곳의 사례들을 소상하게 이야기 한다. 포항의 한 신혼부부는 결혼을 1년 앞두고 창고 20평을 고쳐 집을 짓고 싶다 했다. 창고를 지은 신부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일찍 돌아가신 사연까지 듣고보니 들판 한가운데 자연을 품은 작은 집은 달팽이집처럼 포근하다.
집이 작다고 해서 ‘꿈’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작은 집에도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나 어른들을 위한 파티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한옥으로 작은 집을 짓는 것도 가능하다. 경기도 여주에 지은 ‘고희재’는 3대가 이용하는 집이었기에 집 안에 집이 들어간 듯한 형태로 만들었고, 가족간의 ‘적당한 거리’를 확보하고 싶다고 한 건축주에게는 채를 나누는 방식으로 집을 제안했다.
저자는 “집은 인생도 담기고, 가족도 담기고, 추억도 담기는 또 하나의 식구”라며 “표준화 된 평균적인 집이 아니라 나만의, 나를 위한 집”을 제안한다. 책 뒷부분에 부록처럼 붙은 ‘작은 집 좋은 집 50문 50답’이 상당히 유용하다. 책을 덮으면서 집을 꿈꿔본다. 1만7,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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