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주 말 포승에 묶인 채 연이틀 특검에 소환됐다. 이를 바라본 삼성맨들은 참담함과 절망감에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우리도 피해자인데…” “왜 기업만, 왜 삼성만…”이라며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대외신뢰도가 추락하고 지배구조 및 사업재편 등이 올스톱되면서 삼성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이대로 글로벌 경쟁에서 주저앉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하지만 삼성이 어떤 기업인가. 총매출액 300조원으로 대한민국 국내총생산(GDP)의 27%를 차지하고 삼성전자의 반도체 수출 기여도는 국가 전체에서 24%나 된다. 글로벌 임직원 수는 50만명에 달하고 글로벌 브랜드 가치는 6위다. 명실공히 국가 대표기업이자 최고 글로벌 기업이다.
삼성의 힘은 단순한 숫자의 총합이 아니다. 숱한 질곡과 위기를 헤쳐오며 진화의 진화를 거듭해온 저력이 지금의 ‘삼성 신화’를 가능케 했다. 18일 삼성 사장단이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위기를 극복해온 저력이 있다”고 직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낸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실제로 ‘승부사’ 삼성은 고비 때마다 난관을 정면돌파해왔다. 이 부회장의 조부이자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1966년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벼랑 끝에 몰렸지만 은퇴와 한국비료 헌납이라는 카드로 뿌리째 흔들리던 삼성을 구했다. 이 회장은 글로벌 불황과 보호무역주의로 저가품 수출이 한계에 달한 1983년 2월에는 그룹 차원에서 첨단 반도체 사업 진출을 결심하는 ‘2·8 도쿄 구상’을 내놓고 ‘반도체 삼성’의 초석을 놓았다.
이 부회장 부친인 이건희 회장도 위기국면에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하며 삼성을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회장은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선언을 통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며 ‘혁신의 삼성’으로 도약시켰고 1995년 3월에는 임직원 2,000여명이 모인 구미공장에서 수십만대의 불량 휴대폰을 불태우는 ‘애니콜 화형식’을 통해 ‘품질의 삼성’으로 대변신시켰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의혹 수사 때는 이 회장이 2년 가까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 역시 지난해 하반기 갤럭시노트7 배터리 발화사건 당시 수조원의 손실을 감수하고 전격적으로 전량회수와 단종을 결정하며 위기 때 더 강한 삼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물론 이 부회장 구속은 79년 삼성 역사에서 총수 부재라는 초유의 상황인 만큼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위기다. 삼성으로서는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캄캄한 어둠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삼성은 언제나 그랬듯이 긴 터널에서 빠져나와 빛을 찾았다. 이번 오너십 부재에도 전 임직원이 일심동체로 ‘정도의 삼성’ ‘단단한 삼성’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삼성을 보는 국민의 눈도 달라질 수 있다. 여기에는 오너와 삼성을 동일시한 기업문화를 바꾸고 혁신과 변화로 무장한 쇄신안도 흔들림 없이 실행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특히 차제에 삼성을 질기게 괴롭히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정계와 재계의 관계를 완전히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삼성의 엔진이 멈추면 대한민국의 경제동력은 상실된다. 삼성은 결단코 멈춰서는 안 된다. /홍준석 산업부장 jsh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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