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실명까지 초래하는 퇴행성 망막질환인 황반변성을 3세대 ‘유전자 가위’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은 김진수 단장과 김정훈 서울대병원 안과 교수팀이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해 눈의 망막 중심부 신경조직인 황반부가 신생혈관 때문에 손상되는 것을 막는 두 가지 치료법 개발에 성공했다고 21일 밝혔다.
3세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잘라낼 특정 유전자 부위의 염기서열을 인식하는 ‘가이드(안내자) RNA’와 절단효소로 이뤄져 있다. 희귀·난치병 치료제나 슈퍼근육 돼지, 몸에 좋은 올레인산 함유량을 2배로 늘린 콩 등 부가가치가 높은 작물·가축을 종전보다 손 쉽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이다.
치료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가이드 RNA와 유전자 절단효소 복합체를 실험쥐의 황반 부위 아래에 주사해 구조가 불안정해 잘 터지는 신생혈관이 마구 자라나나게 하는 혈관내피성장인자의 유전자를 잘라냈다. 그 결과 신생혈관이 만들어지는 양을 반영구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게 됐고 유전자 가위는 3일 간의 임무를 마치고 분해돼 사라졌다.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또 다른 치료법은 유전자 가위를 만들 수 있는 DNA를 아데노바이러스 전달체에 실어 생체 내 목표 부위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 유전자 가위를 실험쥐의 유리체강(수정체와 망막 사이를 채우고 있는 무색 투명한 젤 형태의 구조물)에 주입했더니 신생혈관 억제에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이 치료법엔 근육·간·신경세포 등 특정 장기·세포 침투력이 뛰어나 유전자 치료 물질 전달체로 널리 쓰이는 아데노바이러스, 공표된 유전자 절단효소 중 크기가 가장 작고 단일 가닥의 DNA여서 안전성이 높은 CjCas9이 사용됐다. CjCas9은 캄필로박터 제주니 균에서 발굴한 절단효소로 바이오 벤처기업 ㈜툴젠(199800)이 개발했다.
김진수 단장은 “다양한 퇴행성 질환에서도 병적으로 발현이 증가하는 유전자를 잘라내 치료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유전자 가위의 임상적용 범위가 다양한 장기와 전신 질환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훈 교수는 “현재 질환 동물 모델에서 효과를 확인했고 향후 전(前)임상시험과 임상시험을 통해 신약으로 개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저널 ‘지놈 리서치’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게재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황반변성이란=눈의 안쪽 망막 중심부에 물체를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신경조직인 황반이 노화, 흡연, 유전적 요인, 독성, 염증 등으로 변성되는 질환을 말한다. 초기에는 글자나 물체가 비뚤어지거나 찌그러져 보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시야의 중심 부분이 흐려지다 보이지 않게 된다. 자칫 실명할 수도 있다. 연간 16만명가량이 이 질환으로 진료를 받는데 80%가량은 60세 이상이고 50대도 15%쯤 된다. 그만큼 노화와 관련이 깊다.
황반은 노란색 원반 모양인데 시세포와 시신경이 집중돼 있어 시력 및 색각 구분에 핵심적 기능을 한다. 물체의 상이 맺히고 시각정보를 전기신호로 바꿔 대뇌로 보내주는 망막 기능의 90% 이상을 담당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