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가 1,300조원을 넘어 사상 최대치로 폭증한 것은 ‘풍선효과’ 때문이다.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은행 대출심사를 강화하자 2금융권으로 수요가 쏠린 것이다.
지난해 4·4분기에 1금융권으로 불리는 예금은행의 대출액 증가 폭은 13조5,000억원으로 3·4분기(17조2,000억원)에 비해 줄었다. 반면 제2금융권인 비은행예금취급기관 대출은 13조5,000억원으로 은행과 맞먹는 수준으로 늘었다.
상호금융(5조6,000억원)과 새마을금고(4조7,000억원)도 대출이 증가했고 보험사와 우체국의 대출 증가액이 4조6,000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특히 고금리로 대출하는 대부업체 등이 있는 기타금융중개회사 대출 증가액은 4·4분기에 8조5,000억원이나 뛰었다. 이상용 한국은행 금융통계 팀장은 “2금융권과 기타 금융기관 등에서 대출이 증가한 데는 규제가 강화되기 전에 미리 대출을 앞당겨 받으려는 수요가 늘어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태가 여의치 않자 정부는 “새마을금고와 상호금융 등 70여곳에 대한 특별점검을 실시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정은보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2금융권 가계대출 간담회’를 열고 “가계대출이 급격히 확대되는 곳에 대해서는 현장감독을 실시하고 미흡한 기관에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엄중 조치하겠다”고 경고했다. 늘어나는 2금융권 대출을 옥죄겠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당장 다음달부터 상호금융과 새마을금고에도 대출승인을 전보다 까다롭게 하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적용할 예정이다. 또 연내 금융회사 표준심사모형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소득산정 기준을 개선해 대출자의 소득에 비해 과도한 대출이 이뤄지지 않도록 막을 계획이다. 이를 통해 올 가계부채 증가율을 한 자릿수로 관리하는 것이 목표다.
문제는 서민들이다. 대출규제가 확대될수록 신용등급이 낮거나 은행권에서 돈을 빌릴 여력이 안 되는 서민과 영세상인들이 고금리를 적용하는 대부업과 사채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가계대출을 제한하자 2금융권 대출이 늘어난 것과 같은 맥락이다. 4·4분기 기타금융기관(대부업 등) 대출 증가액은 8조5,000억원으로 직전 분기보다 3조2,000억원이나 뛰었다. 금융당국은 미소금융과 햇살론 등 정책서민자금의 공급 여력을 5조7,000억원에서 7조원으로 늘릴 예정이지만 한계가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특히 급증하는 가계부채는 가뜩이나 취약한 소비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빚에 짓눌린 가계가 소비마저 줄이며 ‘경기부진→실질소득 감소→빚 증가→소비 위축’의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실제 물가상승을 감안한 가구당 실질소득은 지난해(3·4분기 기준) 마이너스(-0.1%)로 돌아섰다. 현금운용이 팍팍한 가계들은 신용카드를 사용해 소비를 지탱하고 있다. 지난해 4·4분기 전체 민간소비 증가율도 0.2%에 불과하다. 1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9.3으로 7년10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해 민간소비는 더 위축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지난해 말 기준 1인당 가계부채는 2,600만원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이 예금한 돈(1,240조원)을 모두 빚을 갚는 데 써도 104조원이나 모자란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거나 국내 금리가 인상될 경우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총괄연구본부장은 “전세 가격이 급등하면서 사람들이 집을 사기 위해 대출과 저축을 동시에 늘리자 소비 여력이 위축되고 있다”면서 “만약 부동산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 경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구경우·김흥록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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