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저녁 무렵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588번지에 자리한 사창가, 이른바 ‘청량리 588’을 찾았다. 골목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두리번거리는 기자를 불러 세웠다. “학생 이리와. 여기 아가씨 많아. 5만원에 20분까지 해줄게. 저쪽은 다 빠지고 아가씨도 없어.” 호객행위를 뿌리치고 골목 안으로 발길을 옮기자 군데군데 홍등(紅燈)이 환하게 켜진 성매매업소 몇 곳이 눈에 띄었다. 흰색 유리문 안으로는 다리를 꼬고 앉은 젊은 여성이 홀로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인적이 뚝 끊긴 거리에는 적막감만 가득했다.
호객행위를 하던 여성의 말대로 업소들은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였다. 빈 가게 유리에는 붉은색으로 ‘철거’라는 글씨와 ‘X’자가 그려져 있었다. ‘조직폭력배로 구성된 깡패! 추진위는 수십년간 악덕 포주였다’와 ‘조폭 추진위는 물러가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건 채 영업하는 곳도 있었다. 이미 가게를 허문 자리에는 각종 집기류와 쓰레기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청량리 588 일대는 도심재개발사업에 따라 다음달이면 80여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한때 서울의 3대 집창촌으로 불렸고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150여개 업소가 성업하던 곳이다. 지난해 5월부터 본격적으로 이주가 시작되면서 현재는 성매매업소 6곳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포주를 포함한 상가 세입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해 토지주와 건물주로 구성된 도시환경정비사업추진위원회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하루아침에 추진위와 비대위로 쪼개진 주민들은 각각 “수개월 치 영업비를 보상하고 임대주택을 마련해달라”와 “불법 성매매업소들이 터무니없는 액수를 요구하면서 버티기에 들어갔다”고 주장하며 충돌 직전의 상황까지 치닫고 있다. 동절기가 끝나는 다음달이면 강제철거에 들어가는 터라 물리적인 충돌도 우려된다.
성매매업소들이 사라지면서 인근 상인도 타격을 받고 있다. 집창촌 골목 입구에 자리한 한 분식집은 장사가 한창이어야 할 시간인데도 가게 안이 텅 비어 있었다. 인근에 자리한 포장마차도 사정은 마찬가지. 몇몇 가게는 최근 손님이 뚝 끊기면서 이전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주변 상인들로부터 ‘장사가 안 된다’는 항의성 민원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철거를 눈앞에 둔 시점이라 성매매업소 여성들은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한 성매매 여성은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는 아무런 보상이 없다”면서 “당장 갈 데가 없으니 먹고살려면 문을 여는 날까지 출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량리 588 일대에는 오는 2021년까지 65층 주상복합건물 4개 동과 호텔·오피스텔·백화점이 들어서는 42층 규모의 랜드마크 타워가 들어선다. /최성욱·박우현·신다은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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