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KB국민은행장이 다음달 미국 실리콘밸리를 찾아 구글 등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을 방문한다. 은행장이 글로벌 선진 은행이 아니라 실리콘밸리 ICT 기업을 직접 찾아 최신 동향 파악에 나선 것은 이례적인 행보라는 게 금융권 안팎의 시각이다. 금융과 ICT가 결합한 핀테크 열풍이 불고 있는 상황에서 윤 회장이 핀테크 동향은 물론 관련 업체 인수합병(M&A)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찾으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윤 회장과 일부 임원들은 다음달 초 1주간 미국 출장길에 오른다. 윤 회장은 서부 실리콘밸리와 동부 뉴욕을 오가며 구글·아마존 등 디지털 분야의 혁신·선도 기업들을 차례로 방문할 예정이다. 핀테크와 전자결제 등 미국 현지 핀테크 산업의 흐름을 둘러보고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선진 기술 기업들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차원이다. 국내 금융지주 최고경영자가 디지털·핀테크 기업들을 살피러 실리콘밸리 방문 일정을 대대적으로 잡은 것은 윤 회장이 처음이다. 새해 들어 바쁜 시기인 3월에 국내 여러 현안을 뒤로하고 1주간이나 시간을 빼 실리콘밸리 일정 소화에 나선 것은 그만큼 윤 회장이 디지털 혁신에 대한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국내 은행 산업에서는 고객과의 거래나 소통 과정에 빠르게 디지털이 스며들면서 디지털 경쟁에서 도태되면 한번에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또 4차 산업혁명으로 기업 심사도 현재와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면서 이에 대한 사전 준비도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와중에 KB금융은 발 빠르게 디지털 혁신을 도입하고 있는 신한금융이나 하나금융에 비해 한발 늦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윤 회장은 연초부터 “디지털 혁신으로 미래금융을 선도하자”고 선포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금융권에 핀테크 광풍이 불면서 실리콘밸리에 대한 국내 금융권의 관심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올해는 디지털 혁신 전쟁 원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KB금융은 다른 경쟁 금융지주들이 올해 해외 진출을 화두로 뛰고 있는 것과 달리 오히려 핀테크 등 디지털 분야에 집중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KB금융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해외의 금융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며 “만만하게 봐왔던 동남아 국가들도 정보기술(IT)을 접목해 다양한 핀테크 서비스를 출시하는 등 우리가 곧바로 추격당할 수도 있다”며 위기감을 숨기지 않았다. KB금융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12월에도 김옥찬 사장과 임직원들이 일주일간 미국 출장을 다녀왔는데 호응이 좋아 이번에 윤 회장과 다시 한번 실리콘밸리 일정을 추진하게 된 것”이라며 “회장뿐 아니라 자회사 관리를 책임지는 사장까지 실리콘밸리를 방문해 핀테크의 중요성을 그룹 내에 모두 공유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보리·조권형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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