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은 스스로 자신의 힘을 줄이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한참 ‘작은 정부론’이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정부의 절대 규모나 영향력은 우리 사회에서 약해지지 않았다. 이번 최순실 사태를 접하면서 최근 들어 경제단체인 전경련이 정치권력을 어떻게 대해 왔는가에 대해 그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야 말았다.
기업들을 규제의 사슬로부터, 그리고 정치권력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일은 공짜가 아니다. 이런 필요성에 강하게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지식인들이 이런 생각을 실천에 옮겨줘야 한다. 말들이 많지만 한국에서 자유시장경제의 발전과 같은 공공재적 성격을 가진 문제에 투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단체가 전경련이다.
전경련이라는 조직은 기본적으로 정치권력과 적당한 긴장관계와 협조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시장경제를 강화하고 작은 정부 구현을 위해 좀 멀리 보고 나아갔어야 했다. 이 조직이 청와대 하명을 받들어 임무 수행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은 아니다. 전경련이 존폐 위기를 맞이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으뜸은 전경련 사무국을 이끌었던 수뇌부의 역할이 컸다. 특히 이승철 부회장의 책임이 크다. 모든 조직은 ‘주인-대리인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회원사의 돈을 각출해서 운영하는 단체는 설립 목적이 명확하다. 회원사의 이익을 위한 활동이고 그 활동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부당한 요구를 적절하게 방어해주는 일이었다. 설립 목적에 충실하게 운영했으면 해체설까지 나올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결국은 기업이라는 주인이 맡긴 업무는 제쳐 두고 대리인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크게 확대되고 말았다고 생각한다. 리더의 의사결정에 사심이 개입하게 되면 많은 문제가 생기게 된다. 사건의 전후 과정은 대리인이 사적인 이익을 위해 조직과 직위를 이용하려 들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살면서 깨우치는 진실은, 리더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마땅히 수행하면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반대로 리더가 사적 이익에 눈이 가려지게 되면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혹시 청와대가 줄지도 모르는 달콤한 이익이나 약속에 흔들리게 되면 이번처럼 조직을 어려움에 몰아넣게 된다.
일각에서 주장하듯 전경련을 헤리티지 재단으로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성원의 자질이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직을 축소하고 기업협의회 성격의 단체로서 존속하면서 후일을 도모하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 그동안 여러 일을 해왔고 아직도 역사적 역할이 충분한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미지가 심하게 손상된 점을 못내 아쉽게 생각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