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울산 동구청 현관 앞. 나란히 앉은 권명호 구청장과 시·구의원 5명 뒤에서 구청 직원들이 휴대용 이발기를 들이댔다. 삭발식의 명분은 현대중공업 사업분할 결사반대. 권 구청장은 “사업부 분할이 결정되면 인력 유출로 인한 공동화 현상으로 울산과 동구의 미래는 암담해질 것”이라며 “지금까지 생사고락을 함께한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고용불안을 외면하지 말고 상생 방안을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동구 주민 17만4,000명의 상당수가 현대중공업과 협력업체, 관련 상권에 종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사업분할로 일부 사업장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경우 동구 역시 일정 부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권 구청장 역시 이 부분을 우려한 것이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이날 총파업에도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달 초 상경투쟁에 나선 현대중공업 노조를 만난 자리에서 “회사 분할과 관련해 2월 국회에서 논의해보겠다”며 노조에 힘을 실어줬다. 특히 “현대중공업 문제는 경영권 승계도 있어 복잡하다”고 우 원내대표는 강조했다. 현재 민주당이 회사분할 시 자사주 배정을 금지하거나 자사주를 미리 소각하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해놓은 점을 고려하면 회사분할에 법적으로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일시폐쇄 문제 역시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다. 최근 안희정 충남지사만 “정부가 관여하기 어렵다”고 한발 물러섰을 뿐 대부분의 대선주자들은 ‘군산조선소 폐쇄 금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 태세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소 수주 물량을 배정해야 한다”고 직접 경영에 끼어들었고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존치를 위해 당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공공용선을 발주하고, 선박펀드를 늘리고, 선수금 보증을 빨리해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자신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기업의 경영판단을 두고 정치권에서 내놓는 훈수의 후폭풍이 훨씬 더 클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현대중공업의 경우 조선업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 작업이 진행 중인데 자칫 정치권의 반대에 막혀 구조조정이 지연되거나 좌절된다면 기업의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기아자동차의 구조조정이 정치권의 반대로 지연되면서 피해가 더 커졌다”며 “울산 지역은 물론 중앙정치권에서도 STX조선의 법정관리와 대우조선해양의 부실로 지역경제의 충격이 큰 진해와 거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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