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부 조직개편을 무리하게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여야 정치구도, 대내외 경제상황, 그동안의 나쁜 선례 등 다양한 근거가 뒷받침하고 있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 조직개편은 시급한 상황이 아니다”라며 “부처별 기능 조정 및 신설은 작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도 “여야 의석 수를 볼 때 조직개편안이 국회에서 합의되기도 쉽지 않다”며 “조직개편을 안 하고도 좋은 장관을 임명해 국정을 잘 이끌 수 있다는 모범사례를 남겨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책 내용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정부 조직개편 바람이 불면 관료들도 집중해서 일을 할 수가 없다”며 “정부조직이라는 ‘하드웨어’보다 중요한 적은 정책 내용, 즉 ‘소프트웨어’”라고 지적했다.
전직 장관, 교수들은 조직개편을 꼭 해야 한다면 문제가 있는 부처를 중심으로 최소화해야 한다고 봤다. 특히 미래창조과학부·교육부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연구개발(R&D)의 경우 독일은 정부 지원액이 공정하게 배분되지만 한국은 공정성이 떨어진다”며 “이제는 인공지능(AI) 시대로 학생들의 생산성보다 창의성을 기르는 게 중요해져 교육도 여기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문제점이 지적된 미래부·교육부 등은 개편이 필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도 “교육부는 폐지는 아니더라도 기능 조정이 필요하다”며 “초중등교육은 교육청으로, 고등교육은 고등위원회로, 대학만 정부 소관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미국 예일대는 창립 이래 정부가 단 한 번도 대학 정원을 두고 개입한 적이 없다”며 “우리 교육부의 광범위한 규제권도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인사혁신처에 대해서도 “세계 어느 나라든 인사는 공정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며 “우리처럼 ‘인사혁신처’를 같이 붙여놓는 곳은 없다”고 꼬집었다. 모 대학 행정학과 교수는 “세월호 사고 뒤 급하게 만든 국민안전처 역시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조직개편보다는 청와대 비서실 축소가 더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은 “정부조직법은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청와대 비서실 축소는 법령을 바꾸지 않고도 쉽게 할 수 있다”며 “청와대는 전체적인 정책을 조정만 하면 되는데 직접 챙기다 보니 최순실 사태가 나오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청와대 비서실이 비대해져 지금까지 흐름이 이어오고 있다”며 “행정부 중심으로 일을 하고 청와대는 정무적인 정책 조정 기능만 하는 방식으로 개편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방법으로 청와대 인사수석실을 축소하거나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인사수석실이 시시콜콜한 공무원 인사까지 다 관여하다 보니 부처 장관의 힘이 빠지고 청와대 비서실의 힘이 세지는데 이를 축소 또는 폐지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조직을 이대로 두는 것이 최선일까. 현 여건상 최소화하더라도 정부의 역할에 대한 정의를 세우는 등 중장기 과제로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개발경제시대 유산 때문에 기업규제·산업진흥 등 ‘경제 기능’이 비대해져 있다”며 “지금의 경제는 정부의 경제 기능을 축소하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가 더 할 일이 뭐고 덜 할 일이 뭔지부터 결정한 후 조직개편을 고려해야 한다”며 “지금은 ‘피자(정부)’의 크기를 어떻게 할지는 결정도 안 하고 몇 개로 잘라먹을지만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도 “정부조직 전문가, 시장 참여자, 현장에서 문제점을 경험한 관료 등을 모아놓고 토론을 하고 1안·2안·3안 등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중장기적으로는 부처 가운데 과도한 힘을 자랑하는 곳의 영향력은 줄일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부처 간 견제와 균형(체크 앤드 밸런스) 구도를 만들어 조화로운 경제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기획재정부 장관은 ‘왕’이고 예산실장은 예산으로 ‘장관급’ 힘을 자랑한다”며 “부처의 힘이 과도하면 행정을 마비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중앙부처뿐 아니라 비대한 산하기관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올해 현재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곳은 332개로 2007년 관련 법이 시행된 후 최대를 기록했으며 비슷한 기능을 하는 공공기관이 많은 게 현실이다.
/세종=김상훈·서민준·강광우·이태규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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