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의 대외 여건은 ‘외교 참사’로까지 불린 지난해 하반기와 비슷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난해 7월 정부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기습적으로 결정했다. 지난 2015년 중국 전승절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자리를 시진핑 국가주석 최측근에 배치하며 신뢰를 보냈던 중국은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고 생각하고 보복을 시작했다. 한국 연예인의 중국 방송 출연 금지와 한국산 자동차 배터리 규제 강화, 사드 부지를 제공할 롯데그룹 세무조사, 한국행 전세기 취항 금지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했다. 당시 중국 재경관에서 오래 근무한 정부 내 한 중국통은 “중국도 한국과의 깊은 경제관계를 고려할 때 단교에 이르는 심한 조치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신 세계무역기구(WTO)에 저촉되지 않을 방법으로 교묘하게 계속 괴롭힐 것”이라고 내다봤는데, 정확히 들어맞았다.
한국은 중국에 두들겨 맞았지만 미국으로부터 실익을 얻지 못했다. 북한 미사일 방어라는 명목으로 동아시아에서 중국 견제라는 큰 ‘선물’을 미국에 줬지만 받은 것은 없었다.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외교에서 가장 나쁜 것이 줬다가 뺏는 것인데 한국은 전승절 톈안먼 망루에 올라가 놓고 사드를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의 보복을 예상하고 미국에는 경제 부문의 통화스와프라도 받아왔어야 하는데 부처를 조율해 큰 협상 그림을 짜야 할 청와대가 제 역할을 못했다”고 말했다.
일본에 당한 것은 더 굴욕적이었다. 2015년 말 한일 위안부 협상이 벼락치기로 체결됐고 양국 정부의 관계 개선 바람을 타고 지난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강행됐다. 이는 일본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역시 일본으로부터 받은 것은 없었다.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이 지난해 8월 말부터 시작됐지만 올해 초 일본 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중단됐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교 사안을 전략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즉흥적으로 결정한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외교 참사의 근본 원인은 부처 간 단절로 요약된다. 일본 도쿄에 주재했던 한 한국은행 관계자는 “일본은 다른 나라와 협상할 일이 있으면 전 부처에 ‘받아와야 하는 것을 모두 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지고 결국 국방·외교·경제부처가 합심해 국익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협상을 이끌어낸다”며 “한국은 부처 간 칸막이가 높아 기본적인 협업도 안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른바 ‘사일로 효과(silo effect)’다. 곡식을 저장하는 큰 탑 모양의 사일로와 같이 부처 간, 회사 내 부서 간 협업이 안 돼 개개인, 개별 부서의 역량은 뛰어나지만 결국 조직 전체는 쇠망하는 현상이다. 한때 전 세계 가전제품 시장을 석권했지만 지금은 추락한 일본의 소니가 대표적이다. 같은 소니 제품이라도 모두 다른 배터리를 쓸 정도로 부서 간 협업이 안 돼 기업이 내리막길을 걷는 주된 이유가 됐다.
사드 배치 본격화, 미국의 경제압박이 예상되며 우리 대외정책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드 배치로 나랏돈 4조원을 낸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내 한국 기업 참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것이 외교의 기본”이라며 “사드 배치로 미국으로부터 경제 부문 통화스와프는 못 받더라도 적어도 환율조작국 지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관세폭탄 등은 자제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방부·외교부·기획재정부 등의 협업이 필수이며 탄핵정국에 손을 놓을 경우 지난해 말과 같은 참사가 재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