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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않은 길 가는 삼성] 계열사 협업구조 조율·이사회 전문성 강화...'숙제 수두룩'

<3> '익숙지 않은' 자율경영

공장증설 물산·부품공급은 SDI 등 연결고리 촘촘

사업범위 방대해 전문 경영인만으로 컨트롤 한계

'이사회 중심' 경영도 사외이사들 현장 경험 떨어져

전문 CEO·이사 적절히 안배 '기업 맨파워' 키워야

삼성그룹이 미래전략실을 폐지한 뒤 계열사별 자율경영에 나섰지만 그룹 내 최소한의 조정 기능을 맡을 기구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전실을 폐지한 지난달 28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권욱기자




삼성전자가 갤럭시 휴대폰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베트남 공장 증설이 필요해지면 통상 건설은 삼성물산 건설 부문이 맡고 직원들의 급식은 삼성물산 리조트 부문이 공급한다. 갤럭시 생산량 증가분에 대해서는 삼성디스플레이·삼성SDI·삼성전기가 자재를 공급하고 공정관리 시스템은 삼성SDS가 맡는 식이다. 삼성전자 갤럭시에 탑재된 삼성페이는 삼성카드 가맹점과 연동돼 소비자의 편의성이 높아진다. 삼성카드는 삼성생명을 비롯한 다른 금융계열사와 함께 복합점포를 운영한다. 간접적으로 삼성페이 등과 관련한 광고를 제일기획이 가져가고 내부 전산망 운용은 삼성SDS가 맡았다.



삼성 내부에서는 이 같은 계열사 간 협업구조가 일반화돼 있다.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제조부터 서비스까지 ‘삼성’이라는 브랜드 안에서 생산·공급되는 시스템이 여전히 유효하다. 이 수많은 연결고리에서 삼성 미래전략실은 삼성이 가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최적화’ 업무를 수행해왔다. 동시에 각 계열사 차원에서는 도모하기 어려운 신사업을 발굴하고 엘리엇 같은 외국자본의 공격이 있을 때 방어논리를 개발했다.

삼성이 미전실을 해체하고 계열사별 자율경영 체제를 선포했지만 너무 급작스러운 변화에 대해 삼성 내부의 혼돈이 크다. 미전실 해체 이후 처음 출근한 2일 삼성 직원들은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하루 종일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재계에서는 삼성의 계열사별 자율경영 체제가 극복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진단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뉴삼성’이 너무 급작스럽게 다가온 탓이다. 삼성전자가 당분간 ‘맏형’으로서 중심을 잡는다지만 삼성 계열사들의 사업범위가 워낙 방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 외에 다른 10대그룹의 경우 지주회사와 각자대표 체제를 운영하지만 이는 그룹의 사업이 특정 부분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라며 “삼성은 사업이 너무 방대해 삼성전자를 지주회사로 전환한다 해도 전사를 아우르는 컨트롤을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 LG그룹은 전자와 생활, 현대·기아자동차는 자동차제조업, SK그룹은 에너지와 정보기술(IT) 등 그룹의 사업이 특정 부문에 집중된 반면 삼성은 사업범위가 훨씬 크다. 당장 3개 축으로만 정리해도 전자·금융·바이오로 나뉘고 건설·중공업 등 리스크가 크고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큰 수주형 산업들도 있다. 전문경영인들이 각자의 계열사에서 쌓은 역량만으로 삼성 안팎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삼성이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발표했지만 이 역시 현재 이사회 구성의 면면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만 해도 사외이사 4명과 사외이사 5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사외이사 중 공학 전문가는 이병기 서울대 공대 교수가 유일하다. 박재완(전 기획재정부 장관), 송광수(전 검찰총장), 이인호(전 신한은행장), 김한중(전 연세대 총장) 이사는 각각의 영역에서 관록이 높지만 글로벌 전자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전문성은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표이사 등 사내이사들 중심으로만 이사회가 굴러갈 경우 뉴삼성이 표방하는 ‘이사회 중심 경영’의 본질은 퇴색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기업들의 경우 이사회 경영의 핵심은 결국 ‘맨파워’다. 구글 지주회사인 알파벳의 경우도 실리콘밸리의 대부로 불리는 존 헤네시, 전 포드 최고경영자(CEO) 앨런 멀리, 전 인텔 CEO 폴 오텔리니 등 경영 전문가들이 다수 사외이사로 포진했다. 창업자와 전문경영인, 외부 경영전문가들이 적절히 안배돼야 이사회 경영의 본질을 살릴 수 있다. 지난해 엘리엇으로부터 이사회 구성 다변화 요구를 받은 삼성전자는 올해 정기주총에서 글로벌 기업 CEO 출신의 사외이사 선임을 추진했으나 특검 사태 등과 맞물려 영입이 불발된 상태다. 삼성 관계자는 “결국 삼성의 계열사 자율경영 선포는 다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과도기적 체제로 볼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많다”며 “삼성에는 뉴삼성을 제대로 구현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고 말했다.

/윤홍우·신희철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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