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90대 대장암 환자를 수술해야 할까. 대장항문외과 의사 열에 아홉은 수술을 해야 한다고 답할 것이다. 이유가 뭘까.
첫째, 삶의 질 때문이다. 우리가 먹지 않아도 장관 안에서는 많은 소화액이 분비되고 가스가 생성된다. 그래서 대장암으로 대장이 막히면 배 속이 더부룩하게 부풀어 올라 먹을 수도, 일상생활을 할 수도 없다. 장 폐쇄로 인한 통증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둘째, 대장암은 고령층에 흔한 암이며 식생활의 서구화로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요즘에는 20~30대 대장암 환자도 드물지 않지만 50대 이상이 90%, 60대 이상이 67%가량을 차지한다. 40~50대에 많이 발생하는 대장 용종 중 분화도가 좋은 선종이 암으로 변하는 데 10년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용종은 일찍 제거하는 것이 좋다.
20년 전만 해도 대장암은 흔한 암이 아니었다. 외과에서 수술하는 암 가운데 가장 빈도가 낮았다. 80세 이상의 환자를 수술하는 경우도 흔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의학적 위험도 컸고 환자의 신체 나이도 지금 같지 않았다. 그래서 수술을 결정할 때 위험성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나이가 들수록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능력이 떨어져 조금만 잘못되더라도 큰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달라졌다. 의학이 발전했고 80세 이상 환자의 전신 상태도 많이 좋아졌다. 수술을 하다 보면 비교적 건강한 80대 환자의 배 속 상태는 몸 관리를 하지 않은 40~50대 환자보다 훨씬 좋은 경우가 많다. 건강했던 80세 이상의 고령 환자를 수술해보면 동맥경화 같은 질환이 없어 혈관에 탄력이 있다. 수술 후 회복도 빨리 조기 퇴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셋째, 의학의 발전이다. 과거 대장암은 흔하지 않았고 수술 범위도 넓었다. 직장은 골반이라는 좁은 공간에 있어 암 수술시 개복을 크게 했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고령의 환자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수술 후 합병증을 겪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복강경·로봇 수술과 마취 기술의 발전으로 상처·통증이 작아져 몸의 항상성 유지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수술 후 몸 주요 성분의 소실, 기능 감소, 통증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수술 후 조기회복 프로그램(ERAS)이라는 최신 방법으로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환자는 수술 직전까지 당분·수분을, 수술 후에는 바로 수분·음식을 섭취한다. 통증·염증·합병증을 줄이기 위해 경막하 마취 및 조기 운동, 재활 프로그램을 시행해 환자의 빠른 회복과 조기 사회 복귀를 돕고 있다. 의료 기술과 환자의 회복을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로 고령층도 합병증 없이 회복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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