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전문은행의 메기 역할이 끝난 것 아닙니까. 이미 국내 금융권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이 할 만한 서비스는 다 도입됐고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제한)가 풀리지 않는 한 더 나올 수 있는 혁신도 없을 것입니다.” (국내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
이달 말 인터넷전문은행이 본격적인 영업을 앞두고 있지만 국내 은행권은 벌써 인터넷전문은행의 행보에 대해 심드렁한 반응이다. 혁신적인 핀테크 유전자(DNA)로 무장해 금융시장에 ‘메기’가 될 것으로 기대됐던 인터넷은행이 규제의 장벽을 결국 넘지 못하면서 기대치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은산분리라는 족쇄를 차고 있는 한 인터넷은행은 사업범위 등을 넓히기 위한 자본확충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공룡 같은 기존 금융회사들의 상대가 되기 힘들다.
‘힘을 잃은 메기’로 전락한 인터넷전문은행은 4차 산업혁명 산업에 접근하는 국내 규제의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금융회사를 감독하는 금융 당국의 감독체계가 어느 나라보다 촘촘한데도 아직까지 야당은 “은산분리를 하면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가 될 것”이라는 구시대적 이유를 들며 은산분리를 반대한다. 우리 사회는 1년 전 알파고 쇼크와 포켓몬고 열풍, 페이팔의 결제시장 침투, 중국 드론시장의 급성장 등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의 무서운 진화 속도를 피부로 느꼈지만 여전히 ‘포지티브 규제’의 틀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발목은 입법권력이 가장 질기게 잡고 있다. 대표적으로 전국 14개 시도 전략산업의 규제를 없애 자율주행차·드론·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사업을 활성화하겠다던 ‘규제프리존’법안이 1년 넘게 국회에 계류돼 있다.
규제프리존법은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시도가 드론·친환경자동차·3D프린팅 등 전략산업을 선정하고 정부가 금융·세제·인력 등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과감한 규제완화를 통해 규제가 정비돼 있지 않은 융복합·신산업을 규제프리존 내에서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규제프리존특별법 도입 시 오는 2020년까지 신규 일자리가 21만개 생길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이 법이 장기간 계류되면서 4차 산업혁명 사업자들은 새로운 기술을 시험할 정착지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단적으로 국내에서 임시운행허가를 받은 자율주행차 12대의 주행데이터는 각각의 연구실에만 갇혀 있을 뿐 전혀 활용되지 못한다. 자율주행 빅데이터 축적·공유를 통해 관련 기술 개발을 촉진하겠다는 자율주행차 상용화 지원 정책이 규제프리존특별법 지연에 발목이 잡혀 예산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자율주행차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던 대구시 역시 맥빠진 모습이다. 대구시는 규제프리존특별법이 통과되면 도심형 테스트베드를 구축해 여기에서 수집된 주행데이터나 정밀도로지도 등을 완성차 업체와 관련 중소형 업체에 무상으로 제공할 예정이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핵심 법안이 통과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이나 사업계획을 짤 수는 없다”며 “대통령 탄핵 사태, 대선 등과 맞물려 법안 통과는 더욱 요원해졌다”고 전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인간의 생명연장에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됐던 ‘원격진료’ 역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와 정보기술(IT)을 접목해 원격진료를 발전시킬 잠재력은 충분하나 의료계 등의 조직적인 반발을 극복하지 못했다. 현행 의료법에서는 원격자문 외에 원격진찰이나 원격처방은 허용되지 않고 원격처방전 발급도 극히 제한돼 있다. 반면 우리보다 의료 서비스 수준이 한참 떨어진 중국의 경우 이미 2014년 ‘광둥성 제2인민병원’을 최초의 원격의료기관으로 지정하는 등 원격의료를 본격화하고 있다.
법률에서 명백하게 허용하지 않으면 일단 불법으로 간주하는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는 새로운 혁신을 멈추게 한다. 3D프린터 스타트업 삼디몰이 국내에서 처음 시도한 ‘3D프린터 플랫폼’ 구축 사업은 지난해 8월 전기용품안전관리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 이 업체는 소비자에게 3D프린터 부품을 판매하고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만들도록 하는 ‘DIY(Do It Yourself)’ 방식의 사업모델을 개발했지만 정부가 불법으로 전기용품을 제조했다는 이유를 들며 고발한 것이다.
글로벌 규제체계와 상이한 국내 규제체계 역시 4차 산업혁명의 장애물로 꼽힌다. 이광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보통신기술(ICT) 혁신제품이 국내 규제체계와 글로벌 규제체계가 서로 달라 시장 출시와 서비스 개발이 지연된다”며 “국내외 규제체계를 조화시켜 국내 기업들을 속히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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