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업한 지 4년째인 스타트업 A사의 B대표는 요즘 입맛이 없다. 그동안 수십억원을 투자해 개발한 스마트 웨어러블기기 매출이 100억원대를 바라보면서 흑자를 맛보는 재미도 잠시, 늘어날 세금 걱정에 마음이 편치 않다.
연구개발비 등 여전히 들어갈 돈이 많은데 법인세 감면 혜택은 감질나게 5년만 주고는 사라져버리는 것이 여간 서운한 게 아니다. 창업기업의 서바이벌 시기인 ‘데스밸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최소 7년까지는 세제 혜택을 줘도 될 텐데 정부가 인색하게만 느껴진다.
B대표는 “운이 좋아 흑자전환을 이뤄냈고 벤처기업 인증을 받아 법인세 50% 할인 혜택을 받고 있지만 혜택기간이 끝나는 내후년부터 연구개발(R&D) 투자를 지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호소했다.
#2 가상현실(VR) 기반 시뮬레이터 등을 제작하는 벤처기업 C사는 서울 연구소에 붙는 세금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기업 부설 연구소용 부동산을 보유할 경우 내야 하는 취득세와 재산세에 대한 감면율이 지난 2015년부터 기존 100%에서 최대 75%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올해부터는 60%까지로 더 줄어 붙었다. C업체 이사는 “벤처기업이 글로벌 수준의 기술 경쟁력을 갖추려면 연구소를 잘 운영해 연구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게 중요한데 기업 부설 연구소에 대한 세금 혜택이 줄어드는 것은 매우 아쉽다”고 답답해했다.
창업 3~7년 ‘마(魔)의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힘겹게 통과하고 있는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정부의 인색한 세제 혜택에 목이 타는 갈증을 호소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갈 스타트업들이 굳건히 산업계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좀 더 전폭적인 지원이 시급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는 지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기업의 5년 생존율은 27%에 불과하다. 숱한 스타트업들이 초기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스러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유독 오래 버티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도 입증된다. 2015년 OECD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3년 이내 기업 생존율은 조사 대상 26개국 가운데 25위로 최하위권. 3년 내 생존율이 가장 높은 스웨덴(75%)의 절반에 그친다.
스타트업은 자리를 잡은 중소기업에 비해 조그만 어려움에도 크게 휘청인다. 온·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 스타트업 D사는 최근 낸 법인세 2,000만원이 너무 버겁다. 이익도 안 나고 있는데 3억원의 국가보조금을 받은 게 수익으로 잡혀 ‘울며 겨자 먹기’로 2,00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했던 것이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2,000만원이면 두 달치 인건비”라며 “한 달을 버티기 힘든데 생돈을 날린 것 같다”고 울상을 지었다.
이영민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창업 초기기업은 항상 자금난에 시달리기 때문에 준조세 성격을 갖는 부담금에 따른 애로사항을 상대적으로 크게 느낀다”며 “정부는 창업 중소기업에 부과되는 일부 부담금을 면제하고 있지만 아직 그 폭이 크지 않은 만큼 부담금을 과감히 줄이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프랑스와 영국의 경우에는 결손기업에 대한 조세환급(tax refund) 제도를 도입해 초기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타트업들은 최초 소득 발생 이후 5년까지 세제 혜택을 주는 ‘창업 중소기업과 창업벤처 중소기업에 대한 세액감면(조세특례제한법 제6조)’ 기간을 좀 더 늘려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최초 소득 년도 이후 7년까지 정도로 늘려주면 숨통이 트이겠다는 게 중론이다.
아울러 법인세 50% 감면 혜택을 받는 창업 기업 비율이 4%에 그치고 있는 점도 제도개선이 필요한 이유로 꼽힌다. 대다수 스타트업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현실성 있는 세제 혜택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오히려 매출액 대비 R&D 투자비용이 높은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비용의 일정 비율만큼 세금 포인트를 부여하는 편이 낫다”며 “이 포인트를 근로자에 대한 근로소득 원천징수세, 부가가치세 등 법인세 이외의 세금 차감에 활용하도록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백주연·한동훈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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