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너 씨는 작별을, 인사를, 기념일을, 축제를, 작업의 마감을, 새로운 인생 단계의 시작을, 결산을, 복수를, 확정판결을 싫어한다.” (114쪽 ‘코이너 씨가 싫어하는 것’ 전문)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로도 유명한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는 종종 ‘코이너 씨’ 혹은 ‘K씨’를 앞세워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날렵한 풍자를 내뱉곤 했다. 산문집 ‘생각이 실종된 어느 날’은 브레히트가 30년에 걸쳐 쓴 짤막한 글들을 모았다. 한쪽을 채 넘지 않거나 몇 줄에 불과한 산문이지만 시(詩) 이상의 은유가 깔려 있다.
‘생각의 아버지’라는 글에서 K씨는 ‘희망을 생각의 아버지라 여긴다’는 것에 대해 비난받자 “희망이 아버지가 아닌 생각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다만 그게 어떤 희망인지 하는 논란은 벌어질 수 있다. 친부 확인이 어렵다고 해서 아이에게 아버지가 없다고 의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라고 받아친다. “희망은 생각의 아버지야”라는 표현은 400년 전 셰익스피어가 희곡 ‘헨리 4세’에 적었던 대사다.
“대중의 분노를 산 사람을 가르치기란 어려워.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특히 가르침이 필요하지. 그러니 더 특별히 가르쳐야 해”(85쪽 ‘분노와 가르침’ 일부)처럼 별스럽지 않은 듯한 문장에 변증법적 사고가 담겨있어 질겅질겅 씹고 또 씹을수록 맛이 난다. 1만2,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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