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정부가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창업 분야에서만큼은 정부와 기업의 ‘갑을 관계’가 바뀐 모습이다. 지난해 10월 창업의 메카 선전에서 열린 국제창업자 워크숍에서는 중국 인터넷 기업 텐센트의 창업자 마화텅이 리커창 총리 면전에서 “몽둥이질 한 방으로 차량공유 서비스를 때려잡지 말라”고 훈계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리 총리는 “차량공유 서비스를 활성화하려는 정부의 기본원칙은 명확하다”며 “관련 도시에 좀 더 신중한 연구를 진행하라고 요구하겠다”고 화답했다.
4차 산업혁명에 임하는 중국 정부의 낮은 자세는 우리 정부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법과 제도는 필연적으로 ‘규제’의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혁신 의지를 가진 강력하고 겸손한 리더십은 기업과 인재를 모은다. 이미 중국의 ‘4차 산업혁명 생태계’로 불리는 중관촌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오라클 등 외국계 첨단기업들이 자리를 잡았으며 해외에서 공부한 중국 인재들이 돌아와 혁신기업 창업을 주도하고 있다.
1년 전 ‘알파고 쇼크’ 이후 국내에서도 4차 산업혁명의 열풍이 불었으나 법과 제도, 정부의 컨트롤타워 등은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외형을 답습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4차 산업혁명 대응의 주무 부처로 주목됐지만 다른 정부 부처와 기업을 아우르는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규제의 칼’만 쥐고 기업에 군림하려는 정부 부처의 행태도 여전하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융합인데 기본적으로 정부 부처 간에도 전혀 융합을 시도하지 못하고 주도권 다툼만 벌이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예산권을 갖춘 강력한 대통령 직속 컨트롤타워를 만들되 철저히 민간의 눈치를 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내외적으로 4차 산업혁명의 구심점이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4차 산업혁명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컨트롤타워인 ‘4차산업혁명전략위원회’를 가동했고 오는 4월 중 ‘4차 산업혁명 대책’을 마련해 발표할 방침이다. 이 위원회는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하며 산업통상자원부·미래창조과학부·국토교통부·교육부 등 관계부처 장관 및 민간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하지만 예산권과 부처 간 조정 권한이 약한 컨트롤타워로는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데 근본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실패를 용인하는 창업정신을 키우며 부처가 움켜쥔 규제를 과감히 혁신하기 위해서는 컨트롤타워의 권한이 막강해야 하며 이 틀 안에서 민간기업들이 실질적 주도권을 갖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우리 정부 부처는 생존 속성상 각각의 예산과 규제를 어떻게든 놓지 않으려는 본능이 강하다”며 “대통령 직속 컨트롤타워가 연구개발 예산의 주도권을 갖고 각 부처가 사업 아이템으로 경쟁해 예산을 따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무역협회는 “4차 산업혁명이 경제·산업 등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고려할 때 현재 부처별로 분리돼 추진 중인 정책을 대통령 직속의 ‘국가혁신전략회의’에 통합하고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률에서 명백하게 허용하지 않으면 일단 불법으로 간주하는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 역시 4차 산업혁명 추진 과정에서 반드시 수술해야 할 관행으로 꼽힌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빅데이터 경쟁력을 키우자면 파격적인 정보개방이 중요하다”며 “현행 규제방식으로는 4차 산업혁명을 하지 말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자면 기존의 포지티브 규제를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 누구나 자유롭게 미래 신산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개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담임 선생님’처럼 기업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뛰어놀 수 있는 ‘혁신생태계 조성’에 사력을 다할 때 4차 산업혁명을 이끌 기업이 국내에서도 탄생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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