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가 올라가는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 지난 9일 1,160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하락을 이어가더니 이제는 1,110원대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 외환 당국은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에 대한 우려 때문에 구두개입도 주저하고 있다. 손발이 묶인 것인데 환차익을 노린 외국인투자가들이 단기채권 매집에 대거 나서면서 원화 하락을 부채질하는 상황이다. 원·달러 환율 1,100원선이 깨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다.
21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0전 오른 1,120원30전으로 장을 마감했다. 13일 1,140원대에 진입했던 원·달러 환율은 16일 1,130원대, 20일은 1,120원을 찍었다. 이날은 1,114원으로 시작해 장중 1,110원대를 위협하기도 했다. 하지만 달러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낙폭이 축소돼 1,120원대를 회복했다. 원·달러 환율은 15일부터 5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나타내며 30원 넘게 급락했다.
원화 강세의 표면적인 이유는 수출 회복으로 인해 안정적인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관세청은 이달 20일까지 우리 수출이 지난해 같은 달 대비 14.8% 증가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 연속 수출이 늘었다. 이에 국내 상장사들의 이익이 개선될 것을 기대하고 외국인들은 연일 ‘바이(buy) 코리아’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국내 종합주가지수(코스피)는 장중 2년여(2014년 4월24일 2,189.54) 만에 2,180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문제는 원화 가치의 상승은 이 같은 경제적인 요인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소 뒤틀린 모습으로 원화의 값이 오르고 있다.
무엇보다도 다음달 미국 재무부가 발표하는 환율보고서(4월·10월 발표)에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 때문에 우리 외환 당국은 손발이 묶였다. 원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더 절상될 것으로 내다보고 외국인들이 원화 매수에 나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3월 회의에서 점진적 금리 인상 방침을 밝히면서 원화는 강세 흐름을 이어갔다. 또 주요20개국(G20)이 17∼18일(이하 현지시간)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공동 선언문을 채택할 때 미국의 반대로 ‘보호무역을 배격한다’는 내용을 담지 못한 것도 원화값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
이런 상황 탓에 원화는 주요국 통화 대비 절상 속도가 가장 가파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올 2월 기준 원화의 실질실효환율(2010년 100 기준)은 122.34로 지난해 말(118.53)에 비해 3.2% 상승했다. 미국과 일본·영국·독일 등 주요 27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투기세력들도 원화 강세에 베팅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원화가 가파른 강세를 보이자 외국인들이 환차익에 베팅하는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원화가 당분간 강세를 이어갈 공산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민경원 NH선물 연구원은 “미국의 환율보고서가 나오는 오는 4월 중순까지는 원화 강세로 보고 있다”며 “미국 보호무역주의 이슈가 부각됐고 원화 약세를 막아줄 만한 재료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단 원·달러 환율이 1,100원선까지 빠질 것으로 보이고 1,080원대까지 내려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물론 원·달러 환율의 급락은 한국 경제에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를 모두 가져올 수 있다. 달러화 채무가 많은 기업은 부담이 줄어들고 수입물가 상승세가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원화 강세가 수출업체들의 가격경쟁력에는 악재가 될 우려가 있다. 다만 우리나라 기업의 해외생산 확대 등 구조적 요인으로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보다 약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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