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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주총데이]최순실 사태에 홍역앓은 기업들 "투명경영·사회공헌" 한목소리

삼성전자 주총 "물의 일으켜 송구" 주주달래기 진땀

삼성물산은 의안 상정때마다 불만 터져나와 어수선

다른 기업도 "지배구조 개선 힘 쏟겠다" 다짐 쏟아져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24일 오전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송은석기자




24일 서울 양재동 aT센터 5층 회의실에서 열린 삼성물산 제53기 정기 주주총회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진행됐다. 이사회 의장인 최치훈 삼성물산 대표이사 사장이 단상에서 인사말을 꺼내자마자 한 주주가 최 사장의 발언을 가로막으며 사퇴를 촉구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 소액주주인 이모씨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으로 오너들은 실리를 얻었지만 명예는 잃었다”며 “지주사 전환이 보류돼 주가가 폭락하고 있는데 (최 사장은) 회의를 진행할 자격이 없으니 사의하라”고 소리쳤다. 결국 3분가량 주총이 중단된 후 재개됐지만 의안을 상정할 때마다 주주들의 불만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상장법인의 절반 이상인 924개의 주총이 열린 이날(슈퍼 주총데이), 일부 대기업들이 호실적에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과 맞물려 곤혹스런 상황을 맞았다. 소액주주 사이에서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라는 주문이 이어졌다. 기관투자가들은 기업지배구조 개선 측면에서 경영진에게 철저한 관리·감독을 요구했다. 대통령 탄핵 사태로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가 주총장까지 이어진 셈이다.

배당 규모를 30% 늘리고 주가도 고공비행 중인 삼성전자 역시 주총이 ‘축제의 장’은 되지 못했다. 유럽 2대 연기금인 네덜란드연기금(APG)의 한 관계자는 “회사 외적인 면에서 굉장히 어려운데 경영진에서 어떤 원칙을 갖고 대처하고 있는지, 향후 지배구조 개선 측면에서 관리·감독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과 미래전략실 해체 등 삼성 안팎의 혼란스런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이에 대해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회사의 기본 목적은 경영을 잘해 주주·종업원·사회에 공헌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최순실 지원 과정에서 감시 의무를 소홀히 한 사외이사들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삼성에서 26년간 근무했다는 한 주주는 송광수 삼성전자 사외이사를 지목해 “감사에 책임을 다하셨다고 하지만 회삿돈 400억원이 넘게 유출됐는데 검찰총장까지 하신 분이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하도록 놓아뒀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권 부회장은 이와 관련해 “‘불법 지원’은 주주 개인의 생각이지 저희가 불법으로 지원한 것은 없다”면서 “연간 기부·후원금은 약 5,000억원에 이르고, 이번 건(미르·K스포츠재단 지원)은 이사회나 경영위원회의 의결사항이 아니었고 감사위원회의 보고사항도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기업들은 지배구조 개선 및 사회적 책임을 높이기 위한 개선안을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거버넌스위원회를 다음달 말까지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거버넌스위원회는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되며 주주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영사항에 대한 심의와 주주와의 소통 강화를 위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미 지난해 거버넌스위원회를 설치한 삼성물산 또한 “위원회를 통해 투자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주주권리 보호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또 이번 주총에서 불발된 글로벌 기업 출신 사외이사 선임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른 대기업들도 주총장에서 지배구조 개선 및 사회적 책임에 힘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SK그룹 지주사인 SK㈜는 이날 ‘사회적 가치 창출을 통해 사회와 더불어 성장한다’는 내용을 정관에 추가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기업이 이윤창출을 통한 경제발전 목표 달성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한 것으로 최태원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도 이날 기아차 연차보고서 인사말을 통해 “투명경영과 사회공헌 활동을 강화해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국민 행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LG는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누구보다 앞서 지주사 형태로 운영했고 정정당당한 경쟁을 지향하는 정도경영을 실천했다”며 “사회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면 영속할 수 없다는 믿음으로 더 원칙에 충실한 경영을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삼성전자 주총장에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최연소 주주인 유모(12)군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유군은 공개적으로 발언 기회를 얻고 “처음으로 주총에 참석했는데 앞으로 (제품 개발 등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갤럭시노트7 폭발과 같은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 부회장은 이에 대해 “주총에 참석한 제일 어린 주주인 것 같다. 역사에 남을 것”이라며 “앞으로는 젊은 층의 의견을 받아 좋은 제품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실적부진에 시달리는 조선 업계의 주총은 씁쓸한 분위기 속에 치러졌다.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은 “지난해 해운시장의 침체와 저유가 등으로 조선·해양 사업의 일감이 십수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며 “글로벌 경기 침체의 여파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적을 거둬 주주들에게 죄송스럽다”고 사죄했다.

/윤홍우·신희철·강도원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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