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김현정씨는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코딩학원을 알아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일주일에 한 번, 네 시간씩 수업을 받는데 넉 달에 120만원을 부담해야 했다. 세일 기간에는 80만원에도 가능하다는 학원 관계자의 설명이 뒤따랐다. 김씨는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은 많은데 막상 학부모들이 의존할 곳은 학원이라는 현실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 구글 엔지니어링 이사는 오는 2045년 인공지능(AI)이 인간지능을 뛰어넘는 ‘싱귤래리티(Singularity·특이점)’가 온다고 예견했다. 올해 태어난 아이는 28세가 되면 지금과 전혀 다른 사회생활의 출발선에 선다.
이미 변화는 눈앞에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이세돌 9단과의 대국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구글의 AI 알파고는 지난 1년간 60연승 행진을 거침없이 이어왔다. 지난해 11월 가천대 길병원에 도입된 IBM의 AI 왓슨은 지금까지 200여명의 암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법을 제시하며 환자들의 신뢰를 쌓고 있다.
그러나 눈부신 학습속도를 보이는 알파고, 전 세계 의학논문을 실시간 업데이트하는 왓슨과 비교해 정작 ‘인간’을 길러내야 하는 국내 교육 현실은 답답하기만 하다. 국가 교육의 뿌리인 공교육의 틀은 창의융합적인 인재를 길러내기에는 전혀 맞지 않고 공교육의 빈자리에 기형적으로 성장한 사교육 시장은 사회적 자원낭비와 양극화 문제만 심화시키고 있다. ‘알파고 쇼크’ 이후 뜨겁게 달아올랐던 코딩교육의 인기는 한국 교육의 한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실제 한국의 교육·인재 분야 국가경쟁력 순위는 과거 ‘한강의 기적’의 밑거름이 됐던 교육 수준을 떠올리기 민망한 수준이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교육 시스템의 질은 2015년 66위에서 2016년 75위로 하락했다. 특히 수학·과학 교육의 질은 30위에서 36위로 떨어졌고 인재를 유지하는 국가능력도 25위에서 29위로 미끄러졌다.
그동안 교육과정을 재구조화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이어지기는 했지만 대학입시에 매몰된 현장에서 볼 때 4차 산업혁명에 맞는 교육은 체감하기 힘든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송해덕 중앙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에는 지식 중심의 교육보다 학생들이 가진 역량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다양한 종합과제를 제시해도 각론이 중구난방이다 보니 학생들 입장에서 볼 때는 디테일하지 않다는 게 항상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생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는 원론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정작 학생 개개인을 하나하나 파악하고 교과 안에서 이들의 목표가 얼마나 달성됐는지 알아내기는 시스템과 역량 모두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학교 바깥으로 나서면 교육 시스템의 부재는 더욱 심각하다. WEF는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오는 2020년까지 15개 국가에서 716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예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일곱 살 어린이의 65%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처럼 역동적으로 바뀌는 직업 세계와 달리 발 빠른 학습을 이어갈 수 있는 평생교육 시스템은 턱없이 부족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유효기간이 짧은 지식을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정보 소외자를 배려하는 시스템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송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교실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10%에 불과하고 80~90%는 학교 밖에서 배워야 한다는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며 “결국 학습혁명 없이는 4차 산업혁명도 요원하다”고 강조했다. 김동연 아주대 총장은 “기존 직업의 60~70%가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히려 이 업을 키우고 있는 것이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라며 “과거 성공경험의 틀을 벗어나 청년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바꾸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이연선기자 bluedas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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