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더불어민주당이 내놓은 재벌개혁안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는 것은 무엇보다 지금까지 정부가 취한 대기업 정책과는 궤를 달리하는 ‘무일관성’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주회사 전환이다. 현재 국내 대기업 중 LG·GS·SK·한화그룹 등은 지주회사 체제로 이미 전환했고 삼성·현대자동차·롯데그룹 등은 지주 체제로 탈바꿈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사실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진행된 지주회사 전환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전환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서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대기업들은 지주회사로의 전환 과정에서 인적분할을 통할 경우 자사주가 의결권을 가질 수 있다는 제도적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하지만 이번 더불어민주당의 재벌개혁안에서 이를 다시 막겠다는 원칙을 내세우면서 지주회사 전환을 앞둔 대기업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주회사가 좋은 제도라면 유인책을 써서 전환을 유도하고 나쁘다면 금지하는 게 맞다”며 “지주사로 전환하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의결권 제한 등을 통해 규제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부 대기업을 목적으로 한 정책이 집권이 유력한 정당의 ‘재벌개혁’ 정책으로 내세워지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사실 이번 재벌개혁안에 포함된 재벌계열 공익법인 소유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은 삼성그룹을 정조준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생명공익재단이 3,000억원에 달하는 삼성물산 주식을 매수한 것이 사회공헌활동이 목적인 공익재단과 맞지 않고, 결국 재벌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정치권의 주장이 맞다고 하더라도 이를 전체 대기업에 대한 규제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총 35개 대기업집단이 68개의 공익법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5대 그룹 소속 공익법인의 계열사 주식 보유 총액은 4조원 정도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공익재단이 보유한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것은 주주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으로 시장경제와 맞지 않는 규제”라며 “삼성그룹을 타깃으로 한 규제안이 재계 전체로 확대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존 순환출자 해소와 징벌적 손해배상 지속 확대,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등은 결국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할 수 없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뜩이나 기업들의 투자 의지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막대한 자금을 투자가 아닌 소유구조 재편에 사용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 징벌적 손해배상 역시 무분별한 소송이 난무하게 돼 기업 경영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등 지배구조를 개혁하겠다고 하는데 결국 기업들은 투자만 하고 경영에서 손을 떼라는 얘기”라며 “시장 경제의 틀을 벗어나는 수준이어서 이제 국내에서 기업 하겠다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무엇보다 정치권이 일방적인 재벌개혁안을 강요하기에 앞서 경제 주체의 하나인 기업들과 머리를 맞대 실현 가능하고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는 내용을 합의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당사자인 기업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정치권의 재벌개혁을 앞세운 ‘일방통행’은 결국 대선을 앞둔 ‘표심 잡기’라는 포퓰리즘적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한 대기업 고위관계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모든 기업이 적폐 대상으로 몰리고 있고 문제가 있는 정치권이 이를 개혁하겠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재벌개혁이라는 과제를 인위적이고 급하게 추진하는 것은 더 많은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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