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의료 데이터와 우수한 의료 인력을 확보한 대형 종합병원들이 국내 정보기술(IT) 기업들과 손잡고 ‘스마트 헬스케어’ 대열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가천길병원·건양대병원·부산대병원 등 지방권 병원들이 IBM의 ‘왓슨 포 온콜로지’를 도입하며 의료 서비스 제고 및 환자 이탈 방지에 나선 가운데 대형 종합병원들은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내 IT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미니 왓슨’ 구축에 나서는 모양새다.
차의과학대 분당차병원은 최근 한컴그룹과 인공지능(AI) 로봇, 가상현실(VR) 기술 등을 활용한 스마트 헬스케어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AI·VR를 이용한 인지 훈련 시스템, 상지마비 환자들의 회복과 인지 기능 개선을 위한 VR 재활 훈련 시스템, 노인·경증 장애인용 운동·인지 훈련 로봇, 실어증 환자를 위한 AI 언어치료 시스템, 외국인 환자를 위한 의료 전문 통·번역 시스템 개발에 나선다.
연세대의료원은 지난달 말 한국마이크로소프트·셀바스AI 등 10개 IT 기업들과 다양한 질병 진단·예측 시스템 개발에 뛰어들었다. 재난현장 구급활동을 위한 스마트 응급의료 시스템(마젤원), 정밀의료 기반 아토피 질환 예측 시스템(DS트레이드·DNA링크), 센서 기반 척추 질환 진단 시스템(아임클라우드), 환자 수면 평가 및 예측 시스템(센서웨이), 수술환자 생체신호 기반 회복 개선 연구(베이스코리아IC), 파킨슨병 임상시험 기술(제이어스), 성인병 발생 예측 서비스(셀바스AI), 당뇨병 예측 시스템(핑거앤)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아산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은 총 100억원의 정부·민간 사업비를 투자하는 AI 의료영상 관리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지난 1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원하는 ‘폐·간·심장질환 영상판독 지원을 위한 AI 원천기술 개발 및 의료영상 저장·전송 시스템(PACS) 연계 상용화’ 프로젝트를 추진할 AI의료영상사업단을 발족했다. 오는 2020년까지 AI 기술을 적용한 질환별 의료영상 소프트웨어, 의료용 엔진, 음성인식 융합기술 등 원천기술을 개발, 궁극적으로 진단·치료용 의료기기로 상용화해 세계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KAIST·울산대·뷰노코리아(AI), 코어라인소프트(의료영상 소프트웨어), 메디칼스탠다드(PACS)와 산학연 네트워크를 가동 중이다.
대형 종합병원들이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플랫폼 개발을 위한 산학협력에 나선 배경에는 IBM의 AI 종양내과의사 왓슨 포 온콜로지처럼 선진국 업체가 개발한 것을 사용하면 기술과 정보가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국내 IT 기업들과 협업을 바탕으로 헬스케어 플랫폼을 구축하면 병원이 구축한 의료 데이터를 바탕으로 IT 기업들과 다양한 스마트 헬스케어 서비스 개발이 가능할 뿐 아니라 해외 기업에 의해 기술이 종속되거나 민감한 의료 데이터가 유출되는 등의 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더 나아가 다른 의료기관에서도 플랫폼을 도입하면 추가적인 수익 창출도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적인 요인이다.
윤도흠 연세의료원장은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들이 대학·병원과의 적절한 협력 고리를 찾기 어려워 개발 기술의 적용·확장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연세대 의대·병원·연구소 등이 가진 의료 데이터와 연구 인력, 임상 적용 능력 등을 협력 기업에 개방해 의료 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산학 네트워크로 발전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상은 연세대 헬스IT센터 교수는 “의사들이 진단·진료·재활치료 등에 쓸 수 있는 플랫폼을 제대로 개발해 놓으면 유료 서비스 제공도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동익 분당차병원장은 “다양한 재활치료 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는 VR 치료를 도입해 이미 성과를 보고 있다”며 “IT와 헬스케어가 결합한 새 잠재 시장이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우리 임상·연구 인프라를 적극 지원해 스마트 헬스케어 시장의 패러다임을 주도하겠다”고 말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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