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니 겨우내 칙칙했던 집안 곳곳이 눈에 거슬린다. 봄맞이 새 기분으로 인테리어를 바꾸고 싶은 욕구가 강렬한 때다. 하지만 벽지 바꾸고 바닥재 뜯어내는 인테리어 공사는 시간과 비용 모두에서 만만치 않은 일이다. 반면 올해 인테리어 업계가 주요 트렌드로 꼽은 ‘그림 인테리어’는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그림 하나 새로 걸면 집안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데다 공간을 꾸미고 그 안에 취향과 품격까지 담는 데는 예술품이 화룡점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돈, 비용이다. 미술품은 보통 고가(高價)라는 인식이 강하고 실제로도 그렇다. 경매 기록 경신 혹은 비자금 의혹 등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유명 작품들은 수십억원을 호가한다. 하지만 원화(原畵)가 부담스러우면 판화로, 구입이 어렵다면 대여로 접근하는 등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그림 인테리어’ 방법이 다양하다.
◇원화를 못 사면 판화=‘유일무이’가 미술품의 중요한 가치로 꼽히지만 복제 예술품인 판화는 예술 향유의 기회를 좀 더 많은 사람이 나누게 한다. 임의로 출력한 이미지나 포스터 등은 ‘제품’이지만 판화는 엄연한 ‘작품’이다. 작가의 확인과 유족의 동의를 얻어 제작되는데다 ‘에디션’이 있어 작품 복제량을 제한해 관리하기 때문이다.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063170)이 지난 2012년 첫선을 보인 판화 전문 브랜드 프린트베이커리는 최저가 4만9,000원부터 작품을 판매한다. 유화의 마티에르(질감)를 중시하는 취향만 아니라면 디아섹 기법을 이용해 제작된 디지털판화의 매끈한 표면이 아파트 같은 현대적 주거에 잘 어울려 흡족할 만하다. 프린트베이커리는 지난해 종로구 삼청로와 용산구 독서당로에 각각 매장도 열었다. 삼청점은 정통 화랑가에 위치해 기존 컬렉터 고객들의 방문이 많고 대림미술관 D뮤지엄과 인접한 한남점은 상대적으로 젊은 초보 컬렉터가 즐겨 찾는다. 김환기·장욱진·김열·박서보 등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프리미엄 에디션’이 요즘 인기다. 그림 한 점이 63억원 이상에 팔려 국내 미술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운 김환기의 작품 대표작 ‘5-Ⅳ-71 #200 유니버스’는 가로가 240㎝에 달하는 대작으로 프린트베이커리가 자체 최고가인 400만원에 내놓았다. 원화에 비하면 판화 값은 1,000분의1도 채 안 된다. 벽에 거는 그림뿐 아니라 장식장이나 책상 위를 꾸밀 수 있는 조각작품도 다양한데 일본 작가 구사마 야요이나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의 선호도가 높다. 외국 작가로는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 벽면 영상작품으로 친숙한 줄리언 오피, 데이비드 걸스타인 등이 눈길을 끈다. 갤러리현대 분관 격인 ‘아트큐브’는 판화 전문 갤러리로 김환기·이대원·이왈종·오치균 등 인기작가의 판화를 몇 십만원 대에서 200만~300만원 선에 전시하고 있다.
◇구입이 부담이면 대여=보통 갤러리에서 거래되는 작품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웃돈다. 비단 돈뿐 아니라 고가 미술품과 정갈한 갤러리에 대한 ‘심리적 장벽’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비싼 돈 들여 구입한 그림이 막상 집의 벽지나 주변 가구가 어울리지 않아 속상한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그림을 빌려 걸자. 정수기나 공기청정기 렌털 서비스처럼 ‘그림 렌털’이 가능하다. 2013년 원화작품 렌털 전문업체로 시작한 오픈갤러리는 50㎝×45㎝(10호) 이하 작품을 3개월 기준으로 매달 3만9,000원부터 빌려준다. 대여료는 작품값의 1~3% 수준에서 책정됐다. 3개월 대여기간은 한 계절의 주기에 맞춘 것으로 계절이 바뀌면 그림도 바꿔 걸라는 제안이기도 하다. 한 철 인테리어에 채 12만원이 들지 않는 셈이다. 오픈갤러리의 경우 30대부터 60대까지 폭넓은 유망작가를 확보해 약 1만점의 작품을 대여하고 있다. 추상화·풍경화·팝아트 등 작품의 다양성 이상으로 이용 고객도 폭넓은데 8평짜리 원룸에 사는 대학생부터 유명인까지 천차만별이다. 그림을 빌리려면 홈페이지에서 공간·색상·크기별로 분류된 작품 이미지를 보고 직접 고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집 구조나 거실 사진을 보내주면 소속 큐레이터가 공간의 특성을 고려해 그림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작품 선택이 끝나면 그림의 배송부터 감상하기 좋은 눈높이에 설치는 물론 교체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만약 대여해 걸어둔 그림이 감상할수록 마음에 들어 1개월 이내에 ‘구매’를 결정하면 대여료를 전부 돌려준다. 법인 고객은 다양한 세제 혜택도 받는다. 미술 향유의 대중화와 신진 작가의 활로 모색을 위해 그림 렌털 사업을 시작한 박의규 오픈갤러리 대표는 “여러 그림을 바꿔가며 다양하게 보고 싶은 욕구, 구매 전에 경험하고 싶은 욕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다만 어린아이의 손이 닿는 곳이거나 직사광선이 작품을 손상시킬 수 있는 경우는 대여에 제약이 따른다.
◇유행보다는 내 취향=‘그림 인테리어’가 어렵고 자신 없다면 전문 컨설턴트의 조언을 구하면 유용하다. 미술전공자인 홍지혜 오픈갤러리 디렉터는 “북유럽·인더스트리얼·내추럴·빈티지 등 인테리어 콘셉트를 잡고 사용된 가구나 소품의 색상과 비슷한 톤의 작품을 놓는 것이 가장 쉬운 접근 방법”이라며 “파란 의자가 포인트라면 블루톤의 추상작품, 회색의 패브릭 소파가 있으면 포근한 느낌과 어울리는 연필 소재의 작품, 차가운 철제의자가 있다면 그와 어울리는 블랙톤과 따뜻한 계열의 베이지 색상이 섞인 작품을 놓으면 공간과 이질감 없이 잘 맞다”고 조언했다. 홍 디렉터는 “같은 가구가 놓인 동일한 공간이어도 유화로 그린 추상작품과 먹으로 표현한 동양화를 걸 때의 느낌이 전혀 다른 만큼 계절마다 바뀌는 기분과 취향에 따라 교체하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은영 프린트베이커리 팀장은 “계절에 따라 작품 선택의 서정성이 달라지는데 최근에는 민화, 한국적 정서의 작품도 호응이 좋다”면서 “공간에 따른 그림 크기도 중요한데 거실과 사무실 벽면용으로 10호 크기 작품이 가장 선호되고 책상과 책장이 있는 작은 벽면에는 3호, 아이방이나 거실 통로는 좀 더 큰 5호, 큰 공간에는 20호·40호 이상이 적합하다”고 귀띔했다. 미술품의 가치가 희소성인 만큼 ‘한정판’이 중요하기에 판화를 구입할 때는 ‘에디션’을 잘 챙겨야 한다. 김 팀장은 “품절된 판화 작품에 대해 문의하는 고객이 많은 편이라 판화 시장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경우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판화도 리세일(Resale·재판매)이 가능해 투자 가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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