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세수가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외국계 기업이 낸 세금은 3년 사이 3조원 가까이나 증발해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세정당국과 세금 전문가 등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이렇다 할 원인을 짚어내지 못해 ‘미스터리’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에 따라 국세청도 정밀 원인분석에 착수할 계획이다.
9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세수입은 242조6,000억원으로 1년 사이 24조7,000억원(11.3%)이나 늘었다. 증가폭은 역대 최대였던 지난 2007년(23조원)보다 컸다. 국세수입은 2013년 201조9,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조1,000억원 줄었지만 이후 꾸준히 불어났다. 경제가 팽창하며 세수도 자연스럽게 증가했다.
하지만 외국계 기업(외국인 투자법인+외국법인 국내지점)이 낸 세금은 급격히 쪼그라들며 ‘역주행’하고 있다. 2012년 8조1,186억600만원(3월 신고·납부 총부담세액 기준)에서 최신 통계인 2015년 현재 5조2,687억5,900만원으로 2조8,498억4,700만원 줄었다. 외국계 기업 법인세의 3분의1가량(35.1%)이 3년 사이 증발한 셈이다. 전체 법인세수에서 외국계가 낸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2년 20.1%(전체 법인세 40조3,375억1,400만원)에서 2015년(전체 법인세 39조7,703억7,500만원) 13.2%로 뚝 떨어졌다.
물론 업종별 세금을 보면 외적 원인은 가늠할 수 있다. 제조업 외투법인이 낸 세금이 눈에 띄게 줄었다. 2012년 3조4,673억3,700만원에서 2015년 2조2,197억4,400만원으로 3년 사이 1조2,475억9,300만원(36%) 감소했다. 전체 외국계 기업 세수감소분(2조8,498억4,700만원)의 43.8%였다. 제조업 외투법인은 외국인투자촉진법이 규정하는 기업으로 외국인이 국내에 법인을 세우고 지분의 10% 이상(1인당 5,000만원 이상)을 투자한 곳이다. 한국GM이 대표적이며 외국계 맥주회사 등도 해당된다.
왜 외형이 줄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불충분하다. 이에 대해 세무업계 등에서는 원인을 세 가지 정도로 꼽고 있다.
먼저 외국계 기업이 해외 모회사에 과다한 이익을 보내고 국내에서는 세금을 적게 내는 탈세를 자행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국제조세 전문 변호사는 “한국에 있는 제조업 외투법인이 해외에 소재한 모기업에 상품·용역·중간재 등을 팔고 대가를 받을 때 이를 정상가격보다 낮게 잡으면 이익이 줄고 내는 세금도 줄어든다”며 “이런 식의 탈세가 자행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제조업 업황이 나빠 외투법인이 낸 세금이 줄었다면 한국 제조기업의 법인세도 덩달아 줄어야 하지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 제조기업이 낸 법인세는 2012년 12조7,900억6,400만원에서 2015년 14조4,874억6,900만원으로 13.3% 늘었다.
외국계 기업이 국내에서 이익을 올려도 세금을 내지 않아 비난을 받은 전례도 있다. 2015년 이만우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국내에서 매출을 올린 해외법인 9,523곳 중 4,752곳의 법인세 납부실적이 ‘0원’으로 나타났다. 특히 매출 1조원 이상을 올린 90개 해외법인 중 15곳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고 매출 5,000억~1조원을 올린 82곳 중 17곳도 법인세를 납부하지 않았다. 해외에 막대한 로열티 비용을 지급하고 장부상 이익을 남기지 않아 세금도 내지 않는 꼼수를 썼다.
다만 이 같은 분석에 대한 반론도 있다. 안종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미시분석을 해봐야겠지만 국세청과 관세청이 크로스체크를 하기 때문에 제조업 외투법인이 모기업에 제품 등을 팔고 받은 대금을 축소할 가능성은 작다”고 분석했다. 최기호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도 “외국계 기업들이 탈세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낯선 외국에서 책을 잡히기 싫어 생각보다 성실하게 세금을 낸다”며 탈세 가능성을 낮게 봤다.
한국만의 깐깐한 규제 등으로 유독 외국계 기업만 고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세청에 법인세를 신고한 제조업 외투법인은 2015년 2,081곳으로 3년 사이 6.6% 줄었다. 반면 한국 기업을 포함해 국세청에 법인세를 신고한 총 제조기업은 59만1,694곳으로 22.6% 늘었다. 한국의 높은 규제로 제조업 외투법인이 한국 적응에 실패해 철수하거나 이익이 축소돼 법인세도 줄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제조업 외투법인 외에 금융·보험업의 법인세가 급락한 것도 전체 외국계 기업의 세금을 줄인 원인이다. 2012년 금융·보험업 외투법인이 낸 법인세는 1조5,901억6,100만원에서 2015년 6,029억8,200만원으로 3년 사이 1조원 가까이(9,871억7,900만원, 62.1%) 떨어졌다. 이는 전체 외국계 기업 법인세 감소분(2조8,498억4,700만원)의 34.6%를 차지했다. 안종석 위원은 “금융보험업 법인세가 줄어든 데는 이 기간 외국계 금융사가 한국 사업에서 철수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2013년 외국은행 국내지점의 당기순이익은 9,362억원으로 2009년의 2조4,323억원에서 61%나 감소했다. 당시 국내 금리가 낮아지며 미국 등 선진국과의 금리 격차가 축소됐고 유럽 재정위기도 고비를 넘기며 시장 변동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2012년 골드만삭스 한국 자산운용법인이 철수하는 등 외국계 금융사의 한국 시장 ‘엑소더스’가 이어졌다.
국세청의 한 고위관계자는 “제조업으로 분류되는 정유업계 등은 실적에 따라 세수가 1년 사이에도 크게 변한다”며 “세수가 줄어든 원인을 정밀분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단은 어떤 이유로 외국계 기업들의 세금이 줄었는지 파악해보겠다는 얘기다. 그는 “원인을 제대로 알아내야 뭔가 대응을 하더라도 할 수 있다”면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세종=이태규·서민준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