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마비와 교통사고, 사랑과 불륜, 수술과 유산… 온갖 고통과 상처를 다 겪은 여자가 전(全) 우주를 끌어안았다. 멕시코를 대표하는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는 피 흘리고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으로 온 우주를 품었다. 아기처럼 안은, 제 몸보다 더 큰 벌거숭이는 남편이자 세계적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1886~1957)이다.
고개를 떨구고 앉은 여인이 축 늘어진 사내를 안고 있는 도상은 ‘피에타(Pieta)’다. 이탈리아어로 슬픔과 비탄을 뜻하는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가 죽은 아들 예수의 시체를 무릎 위에 올린 장면을 가리킨다. 아들을 마지막으로 안아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몇 개의 단어로 축약하는 것조차 무례하다. 때마침 죽은 예수가 다시 살아난 부활절 주간이다.
프리다 칼로는 그 자신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인물이다. 그의 인생은 삶에 대한 열정과 죽음 같은 고통이 뒤엉켜 있다. 그녀를 낳은 직후 어머니는 난관협착으로 앓아누웠고 만성 우울증에 시달렸다. 게다가 어머니가 즐겨 읽은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무거운 책들이 어린 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6살에는 소아마비가 덮쳐 걸음이 불편하게 됐고, 18세가 되던 해 멕시코 독립기념일인 1925년 9월 17일에는 달리던 전차가 그녀를 태운 버스를 덮쳤다. 버스 손잡이 난간이 옆구리부터 자궁까지 관통했고 척추와 쇄골·늑골·골반 골절에 오른쪽 다리는 11군데나 부러졌다. 그야말로 산산이 부서졌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다행을 넘어 기적이었다.
침대에 누워만 있어야 했던 그녀는 작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기 자신에 집중했다. 그렇게 그림을,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혁명정신을 접한 프리다는 예술과 정치의 결합을 꿈꾸던 중 벽화작업으로 그 이상을 실천하던 운명의 남자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스무 살 연상의 디에고 리베라는 이미 여러 여자를 거쳐 전처 소생인 아이 둘과 현재 부인 사이에서의 아이 둘을 가진 유부남이었지만 이 차돌같은 시골 소녀에게 빨려들었다. 나이뿐 아니라 키는 20㎝, 몸무게는 100㎏ 이상 차이 나는 세기의 커플이었다. 원래 이름이 ‘마그달레나 카르멘 프리다 칼로 칼데론’인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 리베라의 운율을 따라 이름자 (Frieda)에서 ‘e’를 뺐을 정도로 그에게 맞춰갔다. 그러나 선천적인 자궁기형에 교통사고 후유증까지 겹쳐 프리다 칼로는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거듭 유산했다. 낳아보지도 못한 채 잃은 자식에 대한 사무친 마음은 고스란히 그림이 됐다. 1932년작 ‘헨리포드 병원’에서는 침상에 누워 피 흘리는 여인의 몸이 태아·골반·기계 등과 핏줄로 이어져 있다.
프리다와 디에고의 관계는 열정인 동시에 불안정이었다. 바람둥이 남편은 프리다의 친구뿐 아니라 가장 아끼는 여동생 크리스티나와 불륜을 저질렀다. 배신의 상처에 괴로워하던 1935년의 그림 ‘몇 번 찔렀을 뿐’에는 오른발에만 구두를 신었을 뿐 나체로 온몸이 칼에 찔려 피묻은 침대에 누워있는 프리다의 모습이 등장한다. 늘 당당하던 그녀가 눈감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다. 칼을 들고 옆에 선 중절모 남자는 디에고와 닮은 듯한데 부끄럽거나 미안한 기색은 전혀 없다.
이후 프리다는 일본인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 혁명 지도자 트로츠키 등과 염문을 뿌렸고 동성애에도 빠졌건만 밀어내고 들러붙기를 반복하는 자석처럼 다시 디에고에게 돌아가곤 했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1939년 둘은 이혼에 합의한다. 이혼 직후 그린 ‘짧은 머리의 자화상’에서 프리다는 남편이 사랑하던 긴 갈색 머리를 짧게 잘랐고, ‘프리다 스타일’인 멕시코 전통의상 테우아나 대신 디에고의 것이 아닐까 싶은 커다란 남자 양복을 입고 있다. 손에 들린 가위와 주변에 흩어진 머리카락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처절한 자기부정을 택한 그녀의 속마음을 보여준다. 그 해에 그린 ‘두 명의 프리다’는 심장의 혈관이 연결된 두 사람이 손을 꼭 쥐고 앉아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준다. 결국 믿고 의지할 사람은 자기 자신뿐인 듯 말이다.
“난 일생에 두 번의 끔찍한 사고를 겪었는데 처음에는 전차가, 다음에는 디에고가 날 내동댕이친 것이다.”
프리다 칼로는 그렇게 말하고도 디에고와 재결합한다. 둘의 사연을 알고 그림을 보면 처절한 숭고함이 느껴진다. 안겨있는 디에고의 이마에는 커다란 눈이 그려져 있다. 프리다는 때때로 자신의 자화상을 눈이 3개인 시바신처럼 그리며 이마 부분에 디에고의 얼굴을 새기곤 했다. 시바신의 세 번째 눈은 지혜의 상징인 동시에 파괴를 의미한다. 존경과 영감을 주고받는 이들 부부는 남들이 못 보는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지만 그 깊은 사랑이 상처와 파탄의 원인이기도 했다. 이 원망스런 남편은 아이를 낳지 못한 프리다를 어머니로 만들어 주었고, 이들은 다시 모성애를 상징하는 대지의 여신에게 안겨 있다. 치맛자락 끝에 웅크리고 누운 검은 개는 프리다의 애완견 홀로틀이다. 개는 저승의 문지기다. 가장 눈여겨 볼 부분은 대지 여신의 찢어진 가슴, 즉 바싹 말라 갈라진 땅에서 젖이 흐른다. 그 아래 프리다의 목덜미에서는 붉은 피가 흐른다. 이들 모두를 품에 안은 우주의 여신은 무표정한 얼굴만 보여준다. 좌우로 놓인 해와 달은 갈망하지만 공존하지 못한 채 돌고 도는 프리다와 디에고를 암시한다. 이 사랑과 증오, 생명과 죽음, 낮과 밤이 공존하는 그림은 프리다의 후기작이자 그의 예술세계를 집대성한 작품이라 할 만하다.
디에고 리베라는 멕시코 벽화 르네상스를 이끈 3대 거장 중 한 명이다. 벽화는 마야문화의 유산으로 멕시코 미술을 대표하는데, 리베라의 벽화에는 프리다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다. 프리다는 평생의 소원 세 가지로 남편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외에 혁명가가 되는 것을 꼽았을 정도로 국가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컸지만 남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개인적 주제를 많이 다뤘다. 55점의 자화상을 남긴 그녀는 100여 점의 자화상을 그린 렘브란트에 이어 40여 점의 자기 얼굴 그림을 남긴 반 고흐와 종종 비교된다. 프리다는 “내가 나를 자주 그리는 이유는, 너무 자주 외롭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고뇌하며 파고들어도 해결되지 않는 인물 또한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미술사학자이자 평론가인 조은정 씨는 “사랑과 실연, 신뢰와 배신, 역사와 현실, 상처와 치유, 사고와 고통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건이나 심리적 어려움이 프리다 칼로의 작품에 담겨 있기에 프리다 칼로의 작품 앞에서 미술에 문외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그의 작품은 삶의 문제로 관객과 만난다”고 말했다. 이국적이며 어둡고 활기 없고 때로는 끔찍하기도 한 그의 그림이 시대를 초월한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주는 이유는 ‘위로’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고도 살았으니 같이 힘 내어 살아보자며 손 내미는, 부둥켜 안는 마음 말이다. ‘폭탄을 둘러싼 리본’(앙드레 브르통, 1939년)이라 불린 프리다의 그림과 함께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우는’(T S 엘리엇 ‘황무지’ 중에서) 잔인한 4월이 지나가고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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