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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시장에도 '짝퉁 반도체'가 있다.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 3월 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 위조 반도체의 음습한 그림자

전 세계가 위조 반도체, 이른바 ‘짝퉁 반도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에선 범람한 지 오래고, 미국과 유럽도 짝퉁 반도체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무풍지대는 아니다. 위조 반도체는 이미 사용하고 버려진 전자 제품에서 반도체 부품을 분리해 새 제품으로 둔갑시키는 것을 말한다. 저사양 반도체를 구매한 뒤 고사양 반도체로 눈속임해 판매를 하기도 한다. 위조 반도체 대부분은 중국의 소규모 업체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HS는 지난 2012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위조 반도체로 인한 연간 잠재적 손실 금액이 최대 1,690억 달러(201조2,800억 원)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2014년 세계반도체협의회(WSC)가 펴낸 ‘반 위조 반도체 백서’에 나온 사례를 보면 위조 반도체의 위험성을 더 실감 나게 느낄 수 있다. 보고서에 있는 한가지 예를 보자. 심폐소생에 쓰이는 ‘자동제세동기’를 제조하는 한 업체가 브로커로부터 반도체를 들여왔다. 하지만 제품 조립 과정에서 이들 반도체 중 무려 80%가 불량품임을 알게 되었다. WSC는 만약 미리 발견되지 않고 그대로 제품에 장착돼 판매됐다면 기준치 이상의 전압이 가해져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공항 착륙 유도등의 전원 공급 장치를 제조하는 한 업체가 브로커로부터 반도체를 들여와 제품에 장착했다. 공항에 설치한 후 테스트를 해보니 유도등이 작동되지 않았다. 이 역시 위조 반도체 때문이었다. 검증 과정이 없었다면 대형 항공 사고로 이어졌을 지도 모를 아찔한 순간이었다.
위조 반도체는 1970년대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수량이 많지 않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위조 반도체는 1990년대 닷컴 열풍이 불면서 급증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자 납기 지연이 빈번히 발생했고 가격도 상승했다. 이 기회를 틈타 중국 등 개발도상국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빠른 납기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짝퉁 반도체를 대거 판매하기 시작했다.
브로커들은 온라인 공간에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만들어 위조 반도체를 판매했다. 브로커들은 시중 가격보다 저렴하게 판매하고 수시로 웹사이트 주소를 바꿔 단속을 피해갔다.
위조 반도체 시장이 급성장한 데에는 부정직한 원가 절감을 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위조 반도체를 사용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업체와 이를 방치한 원청업체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OEM업체들은 낮은 단가와 빠른 납기를 이유로 위조 반도체를 몰래 들여와 제품 조립에 활용했다. 위조 반도체는 필드 상에서 고장이 나지 않는 한 발견되기도 어렵다. OEM업체들은 바로 이런 점을 노렸다. 위조 반도체가 생산 공정 과정이나 필드 상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켜도, 업계 신뢰도 하락을 우려한 원청업체들이 이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많았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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