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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호 메디톡스 대표, 국내 1호 보톡스박사서 기업가로…"죽음의 세균서 성공 가능성 발견했죠"

■ CEO & STORY

보이지 않는 미생물 매력에 빠져

밤낮 안가리고 세균배양·독성 실험

정부 지원 발판삼아 메디톡스 창업

입소문타고 단숨에 보톡스명가 우뚝

"5년내 매출 1조·글로벌 톱20 목표"





오랜 시간 한 우물을 파면 어느새 사람은 그것을 닮아간다. 분야는 다르더라도 관심은 열정이 되고 열정은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든다. 때때로 실패를 만나면서 열정을 뒤흔드는 절망으로 좌절하기도 하지만 인내와 노력이 더해지면 대상과 혼연일체가 되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성취를 맛본다. 한 분야의 대가에 이른 이들은 그렇게 애증의 시간을 견뎌내면서 대상과 닮는다.

‘국내 1호 보톡스 박사’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는 그런 면에서 보톡스와 닮았다. 보톡스의 원료인 보툴리눔톡신은 1g으로 100만명을 살상할 수 있는 죽음의 세균이지만 극미량을 피부에 주사하면 주름이 없어지고 턱선이 갸름해지는 마성의 약물이다. 과학자 정현호는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독소처럼 냉철하지만 기업가 정현호는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변화무쌍한 보툴리눔톡신과 닮아 있다.

어린 시절 정 대표의 꿈은 우주선을 만드는 과학자였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우주선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상상으로도 신기했고 지구 밖을 여행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됐다. 과학자라는 꿈을 막연하게 품은 채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훗날 정 대표의 인생을 바꿔놓는 미생물은 이때만 해도 딴 세상 얘기였다.

“전남 광주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는데 당시만 해도 곳곳이 논밭이었어요. 친구들과 물장구를 치고 낚시를 하고 여느 시골소년과 다름없는 성장기를 보냈죠. 과학자가 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을 따라 묵묵하게 공부만 하던 학생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세균처럼 무색무취한 시절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평범한 모범생이었던 정 대표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처음으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의대에 진학하라는 부모님과 앞으로는 바이오가 유망할 것이라는 선생님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했다. 둘 다 넓은 의미에서 과학자의 길이었지만 미생물학과를 과감히 선택했다.

“의사는 직접적으로 남을 치료해주는 직업인 반면 미생물은 더 과학적이고 근본적인 것을 연구한다는 점에 관심이 갔습니다. 생물학과는 크게 식물학·동물학·미생물학으로 나뉘는데 미생물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공부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보이지 않는 영역을 보이는 세상으로 이끌어낸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대학생활은 정 대표와 찰떡궁합이었다. 지도교수를 따라 원서를 뒤지고 논문을 연구하는 일이 무엇보다 즐겁고 재밌었다. 평일과 주말에도 학교에 나가 세균을 배양하고 독성을 실험하는 일상의 연속이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매일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새로운 가설을 검증하다 보니 자연스레 대학원생이 됐다.

“대학원을 KAIST로 택한 것도 아주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당시 서울대보다 KAIST의 실험장비가 더 좋았거든요. 실험장비가 좋으니 연구하는 재미가 커졌습니다. 졸업 후에 딱히 어떤 일을 해야지 하는 목표는 없었고 공부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박사과정까지 밟았습니다.”

미생물학 박사과정에 진학한 정 대표는 훗날 인생을 바꾸는 결정을 한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미생물학도가 선택하는 독성학 대신 독소학을 논문 주제로 고른 것이다. 관련 연구도 부족했고 기반도 여의치 않았지만 독소학을 선택한 정 대표는 실험실에서 운명처럼 보툴리룸톡신을 만난다.

“보툴리눔톡신은 잘 알려진 것처럼 맹독성 세균입니다. 생화학무기로 쓰이면 너무나 피해가 크기 때문에 오히려 국제기구에서 금지하고 있을 정도죠. 지도교수님이 미국에서 가져온 보툴리눔톡신이 있었는데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독성 물질인데 인간의 손을 거쳐 치료제로 쓸 수 있다는 이중성에 반했다고나 할까요.”

당시만 해도 보툴리눔톡신 제품의 원조인 미국 엘러간의 ‘보톡스’는 사시교정용 치료제로 쓰였다. 간간이 보툴리눔톡신을 맞은 환자 사이에서 주름이 개선되는 사례가 학계에 발표되기는 했지만 미국 식품의약품(FDA)은 부작용을 우려해 미용시술용으로는 승인을 내주지 않았다. 보툴리눔톡신의 가능성을 내다본 정 대표는 지난 1992년 KAIST에서 국내 1호로 보툴리눔톡신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국립보건원(NIH)에서 객원연구원까지 마친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정 대표는 1995년 선문대 응용생물학부 교수에 부임한다.

“당시 선문대에 새로 학과를 만들었는데 장비가 좋고 학교 지원도 많았습니다.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생활이었지만 이때가 가장 보람 있고 즐거웠죠. 신흥 바이오기업이 등장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바이오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있다는 점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정 대표의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발생하면서 정부 연구비가 뚝 끊겼기 때문이다. 연구비가 없으니 제대로 된 연구를 이어가지 못하고 논문 성과도 제자리를 맴도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당장 연구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었던 정 대표는 고심 끝에 2000년 메디톡스를 창업했다. 산학협력 기업에 연구비를 우선 배정하는 정부 정책이 정 대표의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됐다.

메디톡스를 창업한 정 대표는 보툴리눔톡신 제품 국산화에 도전한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길이기에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지만 2006년 국내 1호 보툴리눔톡신 제품인 ‘메디톡신’ 개발에 성공한다. 하지만 정 대표는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제품만 개발하면 알아서 잘 팔릴 것이라는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병원에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당시 대형 제약사부터 중소형 제약사를 일일이 찾아다녔는데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요. 프레젠테이션에 쓰는 슬라이드 필름 비용이 아까워 종이에 출력을 해서 가지고 다닐 정도로 자금난도 심각했습니다. 아무리 제품이 좋아도 사업적인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때 제대로 배웠죠.”

한동안 시장에서 외면당했던 메디톡신은 성형외과 환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기 시작한다. 당시 엘러간의 보톡스는 국내에서 연간 1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지만 뛰어난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을 앞세운 메디톡신은 단숨에 1위 제품으로 올라섰다. 뒤이어 출시한 후속 제품도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하며 메디톡스는 명실상부한 ‘보톡스 명가’로 자리 잡았다. 2009년에는 코스닥시장에도 입성했고 2013년에는 원조인 엘러간에 3억9,000만달러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글로벌 바이오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국내 보툴리눔톡신 시장의 절대 강자로 자리 잡은 메디톡스는 올해를 글로벌 바이오기업으로 도약하는 원년으로 삼을 계획이다. 지난해 말 경쟁사를 상대로 보툴리눔톡신 균주 출처를 공개적으로 밝히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한 것도 메디톡스가 글로벌 바이오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성장통이라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정 대표는 “국내 바이오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고 신뢰를 얻으려면 무엇보다 투명한 연구개발(R&D)과 마케팅 활동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보툴리눔톡신, 필러, 기능성 프로바이오틱스를 3대 주력 제품군으로 삼아 향후 5년 내 매출 1조원을 달성하고 글로벌 톱20 바이오 기업에 진입하는 것이 메디톡스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He is

△1962년 광주 △1986년 서울대 미생물학과 △1988년 KAIST 세포생물학 석사 △1992년 KAIST 분자생물학 박사 △1993년 미국국립보건원 객원연구원 △1995년 생명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2007년 선문대 교수 △2000년 메디톡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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