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 관계자들은 최근 중국계 은행 건의안이라면 머리부터 절레절레 흔든다. 지난해 광대은행이 영업을 시작하면서 중국계 은행이 총 6개로 늘기는 했지만 틈만 나면 각종 요구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고위관계자는 “외국계 은행 한국지점(외은지점) 건의안의 절반 정도가 중국계 은행”이라며 “중국 금융당국의 규제 수준은 생각도 안 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운운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로 지난해부터 한중 양국 간의 관계가 얼어붙고 있지만 우리나라에 진출한 중국계 은행은 뒤에서 무더기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는 것이 맞지만 채권발행 허용이나 신용공여한도 확대처럼 당국이 해줄 수 없는 부분까지 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2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중국계 은행은 수십 개에 달하는 건의안을 금융위에 내고 있다.
대표적인 게 채권발행 허용이다. 상법상 법인만 채권발행을 할 수 있는데 지점도 이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영업을 강화하면서 필요해진 부분이다. 중국공상은행은 개인 주택담보대출을 내놓고 공격적인 영업을 펼쳤다. 우리나라에 진출한 중국 기업도 주요 거래 대상이다. 금융당국의 관계자는 “그동안 우리나라에 진출한 외은지점들은 주로 영미계로 투자은행(IB) 업무를 주로 했는데 중국계 은행은 상업은행(CB) 업무를 주로 하면서 대출을 더 많이 하려다 보니 채권발행을 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신용공여한도를 늘려달라는 요청도 해온다. 금융당국의 관계자는 “현재 외은지점은 국내 은행과 똑같이 개별차주는 15%, 개인과 법인을 합하면 20%까지 신용공여한도를 적용받고 있는데 이를 풀어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중국 금융당국의 감독강화와 순익 감소가 국내 금융당국에 각종 요구를 해오는 이유라고 보고 있다. 금융당국의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중국 당국이 본국에서의 자본유출 감독을 강화하다 보니 현지 진출국에서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아졌다”고 해석했다. 당국의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중국계 은행의 순익이 크게 감소했다”며 “영업확대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분석했다.
실제 중국계 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감소했다. 지난 2015년 1,042억원의 순익을 올렸던 공상은행은 지난해 492억원으로 반토막났다. 중국은행도 631억원에서 255억원으로 쪼그라들었고 건설은행과 교통은행도 각각 515억원, 93억원 줄었다.
최근에는 사드 후폭풍에 대한 우려도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의 고위관계자는 “우리나라를 찾는 중국 관광객도 주요 영업대상이었는데 관광객 숫자가 줄다 보니 중국계 은행도 고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금융권에서는 중국계 은행의 이 같은 움직임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특히 중국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언급하는 것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중국 은행감독관리위원회는 최근 7개의 새로운 정책지침을 발표했다. 관영 신화통신조차 ‘규제폭풍’이라는 평가를 낼 정도다. 궈수칭 신임 은행감독관리위원회 주석이 2월 취임한 후 중국 당국이 규제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계의 관계자는 “자신들은 규제가 불투명하고 사드 문제로 인한 보복도 하면서 우리에게 글로벌 스탠더드를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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