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창업기업에 면제되는 부담금을 부과해 2,000억원가량의 세금을 거둔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이는 면제되는 14개 부담금 중 2개 부담금에 대한 특정지역의 한정 조사에서 나온 결과다. 전국의 모든 지역에 창업한 기업을 대상으로 14개 면제 부담금을 다 적용해 조사하면 불법 징수한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여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경제신문이 25일 입수한 ‘감사원의 주요 감사사항 후속조치 실태 결과’를 보면 지난 2012년 경기 파주시 등 29개 지역에 공장을 설립한 1,865개 업체를 대상으로 ‘투자 활성화 대책 추진 실태’를 조사한 결과 593개 업체(36%)가 개발부담금과 대체산림자원조성비 2개 부담금을 면제받지 못했다. 이들 업체의 2개 항목에 부과된 부담금 규모는 2012년에만도 160억원에 달한다. 업체당 한해 2,700만원꼴이다.
창업 중소기업은 초기에 개발부담금, 대체살림자원조성비, 물이용 비용 등 14개 부담금이 면제되는데 파주시 등 29개 지역을 대상으로 2개 항목만 감사해본 결과 10개 중 4개에 가까운 기업이 불법 징수된 부담금을 내고 있었다. 창업기업이 낸 부담금은 중앙정부와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일정 비율로 나눠 가진다.
문제는 감사원의 샘플 조사가 29개 지역, 2개 항목에만 국한됐다는 사실이다. 대상을 전국의 모든 창업 중소기업, 14개 항목으로 확대할 경우 상황은 심각해진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창업 중기업은 매년 2,000억원 안팎의 불법 징수 부담금을 내고 있다. 실제 지난해 설립된 공장은 1만5,346개다. 감사원 조사대로 면제혜택을 받지 못한 비율 36%를 단순 적용하면 5,524개가 불법 징수된 부담금을 내고 있는 셈이다. 금액도 평균 2,700만원을 적용하면 1,491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농지법에 따른 농지보전부담금과 전기사업법에 따른 부담금 등 12개(한 부담금당 최소 40억원)에 부과된 금액도 최소 48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를 모두 감안하면 2,000억원가량의 부담금을 부과한 꼴이다.
이뿐 아니다. 이 같은 부담금 규모는 한해를 기준으로 했다. 부담금은 3~5년 면제받기 때문에 3년으로 계산해도 최소 6,000억원가량의 불법 징수 부담금을 창업 중소기업들이 내고 있었다는 얘기다.
감사원 역시 홍보 미비로 막대한 부담금을 징수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정부가 창업기업을 육성하겠다고 만든 부담금 면제 제도를 제대로 홍보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며 이들에게 세금을 부과했다는 것은 위법을 자행한 것”이라며 “창업자의 호주머니를 털어 정부 곳간을 채운 어처구니없는 횡포”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의 지적에도 불법 징수는 개선되지 않았다. 감사원은 2015년 5월 투자 활성화 추진실태 감사 결과를 산업통상자원부에 통보했다. 초기 창업자가 공장을 세울 때 전력사업기반부담금 등을 면제받는 제도를 알지 못해 대상에서 제외되는 일이 없도록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게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산업부는 감사 결과 통보 후 9개월이 지난 지난해 2월에서야 창업자가 창업과정에서 제출하는 사업계획승인신청서 양식에 관련 내용을 추가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감사원이 최근 주요 감사사항 후속조치 실태를 감사한 결과 산업부는 신청서 양식이 변경된 것을 지역자치단체에 알리지 않고 계속 창업기업에 개발부담금과 대체산림자원조성비 등 14개 부담금을 부과해왔다. 감사원의 지적을 받고도 2년 가까이 창업기업에서 세금을 거둬들인 것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2015년 상반기에 정부가 추진한 투자 활성화 대책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과거 지적 내용을 다시 한번 검토한 결과 산업부가 여전히 창업자부담금면제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지자체가 변경된 신청서가 아닌 기존 서식대로 공장설립 승인 신청을 받고 있는데 이는 산업부 기금 수입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지자체에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이며 산업부에 이를 즉시 수정하라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창업 초기 부담금에 대한 재정부담은 막대하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창업기업 부담금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창업기업 부담금 지출 총액은 812만원 수준으로 응답자의 31.2%가 ‘재정부담이 된다’고 답했다. 특히 재정에 부담이 된다고 응답한 기업의 71.1%는 부담금 납부로 추가 차입과 거래대금 납부 지연 등 회사 자금부족의 원인이 된다고 답했다. 전력산업기반부담금이 가장 부담스러운 부담금으로 꼽혔다. 실제 창업기업이 수도권 외 개별입지에 1만㎡ 규모의 산지 전용공장을 설립할 때 부지 매입과 공장 건축, 제조시설 설치 등에 38억5,000만원이 든다면 대체산림자원조성비 등 부담금과 행정비용만도 1억3,900만원이 들어간다.
최예지 경실련 경제정책팀 간사는 “감사원이 지적했는데도 이를 쉬쉬하고 2년간 창업기업의 호주머니를 털어 2,000억원을 챙긴 정부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며 “그것도 모자라 올해로 일몰이 돌아오는 부담금면제 제도를 없애려는 것은 앞에서는 창업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한다면서도 뒤로는 세금을 부과하는 이중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현호기자 세종=강광우기자 hhle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