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부여, 협회 지원, 지도력과 선수 간 호흡. 이 삼박자로 ‘키예프의 기적’을 쓴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30일 돌아왔다.
대표팀은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끝난 2부리그 세계선수권에서 1부리그(톱디비전) 승격을 확정한 뒤 이날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한국은 등록선수 233명, 실업팀이 3개뿐인 아이스하키 불모지. 이번 대회에서도 세계랭킹이 23위로 가장 낮았다. 대표팀은 그러나 6개국 중 2위(3승·1연장승·1패), 승점 11의 역대 최고 성적으로 2위까지 주는 1부리그 진출권을 따냈다. 지난 29일 최종전에서 슛아웃(승부치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우크라이나를 2대1로 꺾으면서 극적으로 사상 첫 1부리그 승격을 이뤄냈다. 카자흐스탄과 승점이 같았으나 승자승으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아이스하키는 평창 올림픽 유치라는 확실한 동기부여를 발판으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은 2013년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 취임 후 사재 20억원을 내놓을 정도로 올림픽에서의 1승에 승부를 걸었다. 한라 구단은 핀란드의 2부리그 팀을 인수해 유망주들을 파견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 최종전에서 1부리그 진출을 결정짓는 마지막 페널티 샷을 넣은 신상훈도 한라가 인수한 핀란드팀에서 경험을 쌓은 뒤 대표팀 간판으로 올라섰다.
대표팀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스타 플레이어 출신인 백지선(영어이름 짐 팩) 감독 부임 후 패배의식을 떨쳤다. 백 감독은 “한국으로 돌아가 조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2014년 여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어딜 가나 각종 전술과 지도 노하우가 담긴 노트북 컴퓨터 2대를 백팩에 넣어 다닌다. 철저하게 기량에 따르는 선수선발, 강도 높은 체력훈련 등으로 ‘빙판의 히딩크’로 불리는 백 감독은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다. 주위의 환상적인 사람들이 도와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승격”이라고 자세를 낮췄다. 철벽 골리(골키퍼) 맷 달튼 등 귀화선수 5명과 국내선수 간 호흡도 경기를 거듭할수록 맞아들어갔다. 아이스하키는 주요 강국과 다른 나라 간 수준차가 워낙 커 귀화선수 영입이 일반적이다.
평창 올림픽 1승이 불가능한 목표가 아님을 확인한 대표팀은 내년 5월에는 덴마크에서 열리는 1부리그 월드챔피언십에 출전한다. 올림픽에 이어 캐나다·미국·러시아·핀란드 등 최강국들과 같은 링크를 쓰며 아이스하키 붐을 이어갈 흔치 않은 기회를 잡은 것이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