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출근해도 오후4시 영업 마감 후에야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된다는 ‘야근 지옥’ 은행권이 유연근무제를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 인터넷·모바일뱅킹 등 디지털 금융이 은행의 화두가 되면서 기존 근무 체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2일부터 전 계열사에 유연근무제를 전면 도입한다. 우리은행은 물론 우리카드·우리종합금융·우리금융경영연구소·우리신용정보·우리펀드서비스·우리프라이빗에퀴티자산운용 등이 모두 도입 대상이다. 금융권에서 전 계열사가 동시에 유연근무제를 공식적으로 도입하기는 우리은행이 처음이다.
우리은행이 선택한 유연근무제 방식은 재택근무와 같은 업무공간을 벗어나는 개념이 아닌 출퇴근 시간을 직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시차출퇴근제다. 직원들은 오전8시30분부터 오후5시30분, 오전9시30분부터 오후6시30분, 오전10시30분부터 오후7시30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근무시간은 점심 시간을 포함해 총 9시간이다. 만약 자녀가 있는 직원이라면 오전10시30분에 출근해 오후7시30분까지 근무하는 식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2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본부 부서, 영업점 82곳을 대상으로 시차출퇴근제를 시범 운영, 직원들의 높은 호응을 토대로 전 계열사 전면 시행을 결정했다. 실제 우리은행이 유연근무제를 시범 운영한 82개점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90.5%가 “만족한다”고 답변했다.
신한은행은 2월부터 지난해 도입한 스마트근무제를 보완한 ‘스마트근무제 2.0’을 실시 중이다. 본점과 서울 강남 등 각각의 거점 지역에 스마트워킹센터를 신설해 자율출퇴근 횟수를 월 2일에서 주 3일로 대폭 확대했다. 자율출퇴근제는 출퇴근 시간을 오전7시부터 11시까지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제도다. 국민은행도 시차출퇴근제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시차출퇴근제를 신청하면 일주일에 2회 1~2시간 늦게 출근하는 방식이다.
은행들이 유연 근무를 확대하고 나선 것은 고객들이 인터넷·모바일뱅킹을 이용하면서 지점을 찾는 고객 수가 크게 줄어드는 등 업무환경이 급격히 변한 금융권 디지털화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또 디지털 금융 시대를 맞아 보다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한 상황에서 유연근무자에게 장기 프로젝트를 부여해 단발성 업무보다 좀 더 전략적인 고민을 하게 한다는 취지이기도 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유연근무는 비대면 거래가 많아진 근무여건의 변화이기도 하지만 일단 직원들에게 호응이 높은 편”이라며 “디지털 금융 시대에는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한 만큼 같은 시간에 획일적으로 앉아 있는 근무여건이 효율적인 게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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