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노믹스’의 핵심은 경제민주화다. 검찰과 경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감사원, 중소벤처기업부(신설) 등 사정기관과 관련 부처를 총망라한 범정부기구를 구성해 재벌의 ‘갑질’을 막고 동시에 중소기업 육성에 힘을 쏟아 우리 경제의 고질병인 대·중소기업 간 경제력 격차를 줄이겠다는 게 골자다.
이를 위해 재벌개혁의 컨트롤타워 격인 ‘을지로위원회’를 신설한다. 경제 전반에서 갑의 횡포를 견제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운영되던 기구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두겠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공약에 힘입어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집권한 뒤 공정위의 역할로만 국한시켰던 박근혜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을지로위원회를 이끄는 두 축은 공정거래위원회와 중소기업청을 정부 부처로 승격시킨 중소벤처기업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의 불법행위 및 불공정 거래행위를 감시하는 첨병 역할을 수행한다. 김대중 정부 당시 재벌개혁을 이끌었던 ‘조사국’이 부활할 것으로 점쳐진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꾸려진 공정위 조사국은 8년간 17차례의 대대적인 직권조사를 통해 30대 대기업집단의 부당 내부거래 금액 31조원을 밝혀내 3,7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공정위 조사국의 역할은 과거와 같이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부당 내부거래를 캐내는 것뿐만 아니라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기술탈취와 같은 대기업의 횡포를 감시하는 영역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가 가진 ‘전속고발권’은 폐지된다. 전속고발권이란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에 대해 공정위의 고발이 있는 경우에만 검찰이 공소제기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1996년 검찰이 고발요청권을 갖도록 법이 개정된 후 2013년부터는 감사원과 중소기업청·조달청 등도 공정위에 ‘의무고발요청’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폐지해 대기업 등의 갑질로 피해를 입은 기업 누구나 고발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지주회사의 부채비율(현행 200%)과 지주회사가 보유할 수 있는 자·손자회사의 지분율 요건(현행 상장 20%, 비상장 40%) 강화 등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막기 위한 장치도 마련한다. 금융계열사가 타 계열사에 행사하는 의결권도 제한된다. 대기업은 또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단계적으로 없애야 한다.
제도 개선을 통해 중소기업·소비자 등 상대적 약자의 안전망도 강화한다. 대표적인 것이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의 경영실패에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다중대표소송제다. 또 일부 분야에 도입된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전면 도입된다. 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로 피해를 본 소비자를 구제하기 위한 기금도 설치된다.
을지로위원회의 다른 한 축은 중소벤처기업부다. 1차적인 역할은 대기업과의 공정한 거래를 위해 중소기업 단체의 협상력을 높이는 데 있다. 중소기업의 단가 조정요구권 인정으로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의 관행도 근절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도 도입된다. 복합쇼핑몰은 계획단계부터 입지가 제한되고 대형마트와 같은 수준의 영업시간 제한을 받게 된다. 또 대기업이 거둔 이익을 사전 약정에 따라 일부 우수 협력사와 나누는 ‘협력이익배분제’도 확대한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역할은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중소기업 관련 정책을 일원화해 벤처·중소기업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을 진두지휘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는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 지원액을 임기 내 2배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스타트업 지원을 확대하고 성장을 뒷받침해 중소·중견기업의 역량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정책도 수립한다. 소상공인을 위해 카드가맹점 수수료율을 인하하고 과밀업종 자영업자의 재취업·재창업을 적극 지원한다. 의료비·교육비 세액공제도 확대하고 임차인 보호를 위해 상가임대차보호법도 개정한다.
중소기업을 육성해 대기업과의 임금격차를 줄이는 것도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2016년 기준 상시근로자가 5~299인인 중소기업의 월평균 임금은 304만7,579원으로 대기업(495만9,343원)의 61.5% 수준에 불과하다.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 성과공유제를 도입한 중소기업의 성과급에 대해서는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감면해주는 등의 지원책이 마련될 계획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경제민주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경우 자칫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서경 펠로인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법무법인 세종 고문)은 “우리나라는 압축성장을 하다 보니 대기업이 다 쥐고 있는 시스템이 됐는데 그걸 바꾸는 것은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며 “(구조를 바꾸려는) 정책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를 봐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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