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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시대-문제는 정치다<2>] 원격진료·제약 입법 100건 '낮잠'...벤처 신제품 출시조차 못해

■꽉막힌 규제가 바이오산업 발목

표심 의식·이해관계 걸려

정치권 법안통과 차일피일

'바이오산업 정책기여도'서

한국 29위...하위권 맴돌아

"업계·단체 여론 조기 수렴

정책에 반영해야" 목소리





# 상처나 질환 부위에 부착해 치료 경과와 부작용 여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붕대’는 정보기술(IT)과 생명기술(BT)을 융합한 대표적인 혁신기술로 꼽힌다. ‘황금 알을 낳는 산업’으로 불리는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국내 벤처기업들도 앞다퉈 뛰어들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제품을 개발해도 한국에서는 판매가 불가능하다. 정부·의료계·산업계 등 관련 주체의 이해관계가 서로 엇갈린 탓에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법규가 없기 때문이다.

#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7’에서 ‘혁신상’을 수상한 헬스케어 벤처기업 네오펙트는 현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뇌졸중 환자의 재활을 돕는 스마트장갑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를 개발한 이 회사는 게임과 연계한 재활치료 장비를 5년째 연구 중이다. 그러나 정작 국내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신생 벤처기업에 불과했다. 반호영 네오펙트 대표는 “한국은 까다로운 규제 때문에 제품을 언제 승인받고 언제 출시할 수 있을지 전망할 수가 없다”며 “한국의 까다로운 규제 덕분에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해외에서 통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게 됐다”고 꼬집었다.

4차 산업혁명의 첨병으로 부상한 바이오 산업이 정작 국내에서는 정치권의 ‘눈치싸움’과 시대에 뒤떨어지는 ‘뒷북 규제’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헬스케어의 핵심 중 하나인 원격진료법은 수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미용기기를 활성화하는 의료기기법 역시 각계의 표심을 의식한 국회의 이전투구 탓에 매년 논란만 많다. 이 같은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2020년 글로벌 7대 바이오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정부의 청사진도 공염불에 불과하다.

이처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된 바이오·의료·제약 입법 개정안은 100건이 넘는다. 대다수가 바이오 산업 육성을 위해 선진국에서는 이미 통과된 것이지만 정작 우리나라는 국회의 밥그릇 싸움과 각계의 이해관계 상충으로 답보 상태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 한국 바이오 산업 육성과 발전을 위해 정치권이 혜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하소연한다.

실제로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이 지난해 발표한 ‘국가별 바이오 산업 정책 기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전체 국가 중 29위로 하위권을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부문은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각종 규제와 제도 부문에서는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 차원의 투자는 활발하게 이뤄졌으나 정책적인 역량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뇌공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광범위한 만큼 국회도 이제는 전문성을 갖고 각종 법안과 입법을 준비해야 한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IT 경쟁력을 갖추고도 각계의 이해관계에 매몰돼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한국이 IT와 바이오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경쟁력과 인프라를 갖추고도 국회에 발목이 잡혀 선진국과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원격진료 서비스다. 환자가 병원에 가지 않고도 가정이나 직장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혁신적 서비스지만 정작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를 갖춘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 19대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원격진료 서비스 도입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이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의료 서비스에 IT를 연계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원격진료 서비스를 조기에 도입해 동네 병원을 찾는 1차 진료를 활성화하는 것은 한국이 바이오 강국으로 도약하는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지역별 의료 서비스가 낙후된 중국도 일찌감치 원격진료 서비스를 도입했다. 중국은 지난 2009년 의료개혁을 위한 핵심사업으로 원격진료를 도입한 이래 2014년부터 원격진료 및 자문, 전자처방전 발급, 의약품 구매 등 원격의료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의료법은 원격진료 서비스의 주체를 의사로만 한정한 탓에 의사와 환자가 대면하지 않는 원격의료 서비스 자체가 불법인 상황이다. 가장 큰 이유는 국회의 밥그릇 싸움이다. 여당과 야당 모두 법안의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원격의료보다 취약계층을 배려하는 응급의료체계 구축이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과 의료 서비스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없다는 대한의사협회의 입장을 받아들인 일부 정당의 반발로 법안 처리가 멈춰 있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원양어선 선원이나 최전방 장병들을 돌보기 위해서라도 현행 의료법을 수정해 의사와 환자의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며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의료 취약계층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원격의료 서비스 도입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2년 우여곡절 끝에 도입된 편의점 일반의약품 판매도 여전히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감기약·소화제·해열제·진통제 등 13종으로만 허용된 품목을 늘리는 것을 놓고 제약 업계와 약사회의 입장이 갈리면서 국회가 눈치만 보고 있어서다. 심야와 주말에 문을 여는 약국이 여전히 부족한 상황에서 편의점의 일반의약품 판매 확대는 필요하다. 그러나 약사회의 강력한 반발로 막혀 있다. 소비자단체 등에서는 국회가 조기에 여론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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