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집무실에 설치된 일자리 상황판은 고용률·실업률 등 18개 일자리 지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각 부처는 경쟁하듯이 일자리 관련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돌리겠다는 공공과 민간기업의 선언도 잇따른다. 이런 추세로 제시한 대책들이 현실화되면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역점으로 뒀지만 결국 이루지 못한 청년실업 문제, 고용률 70% 달성은 떼놓은 당상이다.
정권 초기의 핵심 과제임을 감안할 때 일자리의 양은 어떤 식으로든 늘어날 것으로 정부 안팎에서는 예측하고 있다. 문제는 계속성과 실효성이다. 정부가 ‘속도전’으로 밀어붙여 만든 일자리의 지속 가능성 효과가 의문시된다는 지적이다. 공공부문 일자리부터 마중물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취지지만 일자리는 부가가치 창출이 동반되고 민간이 만들어야 지속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고위관계자는 “일자리의 핵심은 숫자가 아니라 부가가치”라며 “공공부문 일자리 역시 숫자 늘리기보다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해야 지속 가능하고 경제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충성 경쟁하듯 쏟아내는 일자리 대책=정부 부처가 대통령 지시사항인 일자리대책을 쏟아낸 곳은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고 있는 국정기획위원회다. 각 부처는 업무보고를 통해 대통령 1호 공약인 일자리 창출 아이템을 맨 위로 올렸다. 가장 먼저 업무보고를 한 기획재정부는 6월 말까지 공공부문 일자리 로드맵을 만들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한 액션플랜이 담길 것으로 관측된다. 기재부는 공공부문 일자리 만들기의 신호탄이자 시험대인 추가경정예산 편성 작업도 맡고 있다. 추경은 당정협의 등을 거쳐 오는 6월7일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이 확대 도입하겠다고 밝힌 고용영향평가제는 사실상 전 부처가 매달리고 있다. 5월 말까지 제출하는 내년 예산 요구안에 각 사업별 일자리 창출 효과 등을 의무적으로 평가해서 제출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 경쟁에는 중앙은행과 국세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행은 이날 고용을 늘리는 중소기업에 대해 저금리로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중개지원 대출을 늘린다는 방침을 냈다. 국세청도 지난 27일 업무보고에서 일자리를 2% 늘린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를 줄이겠다고 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집행기관인 국세청까지 나선 것은 이례적”이라며 “대통령의 일자리 드라이브가 그만큼 강하다는 방증 아니겠냐”고 말했다. 실제 문 대통령의 공약집에 담긴 일자리 대책은 하나둘씩 순차적으로 정부 대책에 반영되고 있다.
◇쏟아지는 일자리 대책의 효과는 미지수=정부 부처는 물론 공공과 민간까지 앞다퉈 일자리 창출에 매달리고 있지만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지수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소득주도 성장을 경기 선순환을 위한 패키지로 보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면 소득이 늘어나고 내수도 자연스럽게 살아나 경제도 성장한다는 논리다. 추경 등 정부 재정을 통해 공공부문 일자리 마중물부터 만들겠다는 생각도 여기서 나왔다. 그러나 소비가 살아나지 않은 것은 소득정체보다 고령화 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저축을 늘리고 씀씀이를 줄이는 구조적인 요인이 더 크다. 때문에 정부 재정을 투입해 단순히 일자리의 숫자를 늘리기보다는 구조개혁 등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중장기 대책에 드라이브를 걸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산업연관표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업종별 평균 취업유발계수는 12.9명으로 2010년 13.9명보다 줄었다. 경제 성장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약해지고 있다는 것인데 전기·전자기기(5.3명), 화학(6.3명), 기계·장비(9.1명) 등 제조업이 농림수산(31.3명), 음식·숙박서비스(25.9명)보다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다. 역대 정부가 정책자금 등 다양한 지원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려고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정부가 충분한 논의 없이 대통령 공약에 맞춰 급하게 쏟아낸 대책이 역대 정부 일자리 대책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난 정부는 고용률 70% 달성을 목표로 수차례의 청년 일자리 대책과 경력단절녀 대책 등 일자리 대책을 쏟아냈지만 지난해 말 현재 66.1%로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부문 일자리 만들기는 극단적인 경제위기 때나 쓰는 처방법”이라며 “공공부문 일자리가 늘면 민간부문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연결고리도 없는데 공공부문 마중물로 민간부문까지 퍼지게 한다는 발상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일자리는 시장의 논리에 따라 민간이 만들어가는 것이지 정부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국민 세금으로 만드는 일자리와 기업 등 민간이 수요를 늘려서 만드는 일자리의 질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경제 선순환에도 기여하는 바가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세종=김정곤기자 구경우기자 mckid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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