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상승하자 재무상황이 한계에 부닥친 기업들이 우선주·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유상증자와 채권과 주식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 메자닌증권을 신규 발행해 자금조달에 나서고 있다. 과거에는 주식 물량이 늘어나며 주가가 하락하거나 대주주 지분율 하락으로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어 오너 기업은 꺼려온 방식이다. 그러나 경영권보다 배당금을 원하는 투자자의 성향과 시장 상승 시에 자금 조달을 서두르는 기업의 이해가 맞물려 시장에 대규모 물량이 잇따라 풀리고 있다. 증시에서도 이런 발행 물량을 반기고 있다. 물량이 늘어나며 주가가 하락하기보다는 재무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춰 주가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5월 우선주 상승률은 4월 말 대비 8.6%로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중인 코스피지수 상승률(6.7%)보다 높았다.
우선주는 일반 보통주와 달리 의결권(경영권)이 없는 대신 보통주보다 배당금 수령권이 앞서는 증권이다. 보통주보다 가격이 낮지만 물량이 적어 배당철인 연말을 제외하면 일반 투자자에게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한화가 4,000억원의 의결권 없는 우선주를 발행했고 올해 들어서는 우선주가 줄줄이 30~50%씩 상승하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국내 기업의 성장성이 줄면서 시세차익 기대보다 안정성에 주목해 배당금을 원하는 수요가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16년 12월 결산 배당금은 21조4,365억원으로 전년 대비 10.2% 늘어나는 등 배당성향이 높아지는 추세다.
기업 입장에서도 우선주는 시장에 물량이 대량으로 풀려서 주가가 내려가더라도 의결권이 없기 때문에 경영권을 위협받지 않는다. 한 증권사 대표는 “미국은 적은 지분을 가진 오너가 차등의결권을 통해 기업을 장악하지만 우리는 우선주가 그 역할을 한다”면서 “지분율이 적더라도 우선주를 통한 자금 조달은 경영권에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주주가치를 높이는 기업으로 시장에서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주인수권이 주식으로 교환되며 주주가치 희석 악재에 시달렸던 BW도 재무구조 개선 수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2년간 사모형 BW만 허용했던 규제가 분리형 공모 BW도 발행할 수 있게 풀리면서 일반 투자자를 상대로 한 대규모 물량이 쏟아진다. 두산그룹은 지난 2월 두산중공업이 5,000억원을 발행한 지 석 달 만에 두산인프라코어가 5,000억원을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높은 이자의 차입금을 갚고 신규 투자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주가는 BW 발행 공시 직후인 29일 13.54%나 하락했지만 이후 재무구조 개선에 초점이 맞춰지며 연이틀 소폭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1월에는 7년 만에 1,000억원의 BW 발행을 통한 재무개선에 나선 동아쏘시오홀딩스도 주주가치 희석이나 경영권에 대한 우려보다는 시장에서 재무구조 개선에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며 주가 반전에 성공했다. BW는 일정 시점 이후에는 낮은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권한이 붙은 사채다. 분리형은 주식을 살 수 있는 권한만 따로 떼어 사고팔 수 있다. 대규모 BW 발행은 당장 주가하락과 추후 지분 투자자가 늘면서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는 단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은행대출에 비해 문턱이 낮고 조건에 따라 중간에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부담이 낮다. 모든 투자 물량이 주식시장에 노출되는 일반 유상증자에 비해 BW는 채권으로 계속 가져가는 투자자가 있기 때문에 주가하락 위험도 비교적 적다. 1월24일 BW 발행을 전후해 11만원대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외국인의 매수세에 힘입어 두 달 만에 15만원대로 회복했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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