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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반도체 장비 기업 만드는 게 꿈”

최우형 APTC 사장, 투자자에서 경영자로 나서 ‘부활의 전설’ 쓰다

반도체 식각 장비 업계의 ‘뜨는 별’, 국내 넘어 세계 시장 정조준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최우형 APTC 사장이 반도체 식각 장비 모형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경기 호황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칩 제조업체뿐 아니라 장비 제조업체들에게도 훈풍을 불어넣고 있다. 반도체 식각(蝕刻, Etching) 장비 업계에서 유망주로 부상하고 있는 APTC의 최우형 사장을 만나 반도체 시장 현황과 전망 등을 들어봤다.


한국이 반도체 산업의 후발주자 딱지를 떼고 세계 시장의 중심으로 성큼 도약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부터였다. 당시 한국은 16메가 D램, 64메가 D램, 256메가 D램을 잇따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삼성전자를 앞세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강자로 우뚝 서게 됐다. 그 무렵 우리 국민들은 “대한민국이 첨단 산업에서도 세계 일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한껏 들뜨기도 했었다.

최우형 APTC 사장이 반도체와 운명적인 인연을 처음 맺게 된 것도 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93년 장은창업투자(현 KB인베스트먼트)에 입사하면서 벤처캐피털 업계에 발을 내디뎠다. 신참 벤처캐피털리스트였던 그는 어느 날 조동성 당시 서울대 경영대 교수가 쓴 <한국 반도체의 신화>라는 책을 접하게 된다. 이 책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 어떻게 미국과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었는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는 이 책을 읽고는 한마디로 반도체에 꽂혀버렸다. 그 순간부터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주로 반도체 분야 기업 투자 전문가로 경력을 쌓아왔다.

최우형 사장이 말한다. “조동성 교수의 책을 보고 처음 반도체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런데 우리 기업들이 반도체 칩은 잘 만들지만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수적인 장비는 대부분 수입해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게다가 반도체 장비 가격은 시장을 주도하는 외국 기업들이 부르는 대로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건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니까 국내 반도체 장비 기업들을 육성하는 데 투자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마침 1995~96년 무렵부터 국내에서는 반도체 장비 국산화에 대한 움직임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벤처캐피털리스트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데는 또 다른 계기도 있었죠. 90년대 후반 인터넷 붐이 일면서 미국 인터넷 검색엔진 업체인 ‘야후’가 대박을 터뜨렸지 않습니까. 그때 야후의 성공신화 뒤에는 벤처투자자의 역할이 컸던 것을 알게 됐죠. 그러면서 저는 혁신적인 기업을 지원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 벤처캐피털 리스트 본연의 역할이라는 신념을 갖게 됐습니다.”


반도체 산업과 운명적인 인연

반도체 산업 동향을 유심히 관찰하던 그는 2002년 9월 어느 날 APTC라는 반도체 장비 기업을 알게 된다. APTC는 그 해 2월 설립된 신생 벤처기업이었다. 그러다 보니 APTC 창업자는 투자를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KB인베스트먼트에도 투자 의향을 타진하게 된 것이었다. 최우형 사장은 당시 KB인베스트먼트의 투자 담당자로서 APTC 창업자를 만나게 된다. 지금의 김남헌 APTC 대표이사였다.

김남헌 대표는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재료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유학을 떠나 스탠퍼드대에서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 공학자다. 그는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의 유명한 반도체 장비 기업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등에서 반도체 식각 장비 연구개발에 다년간 매달렸다. 본인의 기술력에 자신감을 갖게 된 그는 어느 날 문득 조국의 반도체 산업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는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2002년 APTC를 설립했다.

최우형 사장은 김남헌 대표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날 김남헌 대표를 면담하면서 저는 30분도 지나지 않아 ‘무조건 투자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그분의 경력과 능력에 대한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죠. 특히 에처(Etcher·반도체 식각 장비)는 반도체 장비의 꽃인 데다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장비이기 때문에 투자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APTC에 투자하겠다고 하니까 주변에서는 다들 만류했습니다. 에처 분야는 너무 어렵기 때문에 실패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유였죠. 이미 여러 기업들이 에처 개발에 도전했다가 수백억 원의 자금만 날렸다는 이야기도 곁들이더군요. 당시 KB인베스트먼트 내부에서도 반대가 심했어요. 12명의 투자 심사역 중에서 무려 9명이 반대했었죠. 하지만 저는 쉬운 것에만 투자하면 그건 벤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실패할 위험성이 있더라도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는 유망 기업에는 분명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밀어붙였던 겁니다. 결국 회사에서도 투자 승인을 내려주더군요.”

벤처캐피털은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가진 신생 벤처기업들의 성장을 돕는 귀중한 마중물 역할을 한다.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을 이루는 두 개의 수레바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벤처캐피털도 투자 수익을 얻게 된다. 하지만 국내 벤처캐피털 업계는 투자 결정에 관한 한 적잖이 보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요컨대 위험을 감수하는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에 소극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안전한 투자, 쉬운 투자, 남들을 따라가는 투자, 이익만을 추구하는 투자가 관행처럼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것이다.

반면 최우형 사장의 벤처 투자 철학은 ‘이익도 중요하지만 의미와 보람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쪽이다. 특히 대만이나 일본처럼 중소기업을 강하게 키워내 국가 경쟁력 강화에 일익을 담당하는 게 벤처캐피털이 해야 할 역할이라는 게 그의 확고한 철학이다.


APTC 공장 내부의 클린룸 앞에 서 있는 최우형 사장 뒤쪽 유리창으로 반도체 식각 장비들이 보인다.



벤처 투자는 국가 경쟁력 강화에 도움 돼야

그런 점에서 어쩌면 최우형 사장의 남다른 철학과 신념 덕분에 지금의 APTC가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APTC가 성장 과정에서 중대한 고비를 맞았을 때, 그가 혼신을 다해 회사를 지탱해왔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APTC는 반도체 식각 장비, 즉 에처를 주력 제품으로 삼고 있다. 식각은 실리콘 웨이퍼에서 필요한 회로 패턴을 형성하는 공정을 말한다. 반도체 제조의 가장 핵심적인 공정 중 하나로서, 반도체 회로 설계와 공정의 미세화가 진전됨에 따라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APTC는 플라즈마(Plasma·기체 상태의 물질에 계속 열을 가해 초고온 상태가 됐을 때 음전하를 가진 전자와 양전하를 띤 이온으로 분리된 상태의 물질)를 활용한 반도체 식각 장비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최우형 사장은 “APTC의 핵심 기술은 한마디로 플라즈마를 정밀하고 균일하게 컨트롤해 웨이퍼를 식각하는 기술”이라며 “세계적으로도 이 정도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업체가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APTC는 창업 초기부터 비교적 좋은 실적을 내면서 순풍을 탔다. 최우형 사장이 근무했던 KB인베스트먼트를 비롯해 다수의 벤처캐피털 업체들이 APTC의 기술력과 장래성을 보고 투자를 단행한 것도 든든한 디딤돌이 돼주었다. APTC는 차별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정부가 수여하는 각종 기술상도 여러 차례 수상하며 반도체 업계가 주목하는 기업으로 커나갔다.

하지만 APTC는 오래지 않아 심각한 고비를 맞게 된다. 2006년 무렵 개발한 300mm 웨이퍼용 장비들이 고객사의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칩 제조업체들은 공정 미세화와 생산성 향상, 첨단 제품 출시를 통해 경쟁사들보다 한발 앞서가기 위해 끊임없이 생산설비 신·증설을 단행한다. 그런데 APTC는 300mm 웨이퍼용 장비에 이르러 고객사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큰 암초를 만나게 된 것이다.

한번 실기(失機)를 하자 좀처럼 반등의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제대로 된 실적을 내지 못하는 암흑기가 2012년까지 길게 이어졌다. KB인베스트먼트에서 APTC에 대한 투자를 담당한 최우형 사장도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그의 소개로 APTC에 투자한 벤처캐피털 업체들과 지인들도 상당수였다. 주변에서 그를 원망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그의 가슴속도 숯처럼 타들어 갔다.

그는 도저히 활로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본인이 직접 APTC를 살리는 데 앞장서기로 결심한 것이다. 가장 먼저 그는 영업 일선에 뛰어들었다. 핵심 고객사인 SK하이닉스를 발이 닳도록 드나들며 관계를 다져나갔다. 그 과정에서 APTC가 개선해야 할 문제점을 파악한 그는 SK하이닉스의 요구조건에 맞추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2015년 1월부터는 아예 APTC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그는 얼마 전 사장으로 승진했다). 자신이 20년 이상 몸담았던 벤처캐피털 업계를 떠나 벤처기업 경영자로 변신한 것이다. 김남헌 대표와는 효율적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정통 엔지니어인 김 대표는 연구개발에 더욱 매진하고, 자신은 영업과 경영을 전담하는 방식이었다. 최우형 사장이 본격 합류한 이후 APTC는 조금씩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극적인 반전의 기회를 잡게 됐다. SK하이닉스가 APTC에 다시 장비를 발주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최우형 사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살 길은 APTC를 살리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능성은 거의 제로였죠. 저는 미친 사람처럼 SK하이닉스 담당자들을 만났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APTC 직원들에게는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해 우리 스스로 변화하자고 설득했습니다. 다행히 모든 임직원이 함께 힘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노력 끝에 장비 업그레이드 및 공정 기술 개선이 기적 같은 결과물을 내면서 SK하이닉스의 선택을 받게 됐죠. 지난 4월에는 SK하이닉스가 APTC를 ‘기술혁신기업’으로 선정하며 양사가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어나가게 됐습니다.”

최우형 사장은 지난날의 우여곡절을 떠올리다가 깊은 감회에 젖는 듯했다. 그는 “강을 건너야 하는데 돌다리조차 없는 상황에서 열심히 돌을 찾아 하나씩 둘씩 놓다 보니 어느새 강을 건넌 느낌”이라며 “모든 게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APTC가 재기에 성공하면서 벤처캐피털 업계에서는 거의 다 죽어가는 회사를 살려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최우형 사장을 가리켜 ‘레전드(전설)’를 썼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최우형 APTC 사장은 인터뷰에서 APTC의 성장 가능성을 조심스레 낙관했다.



반도체 시장 ‘슈퍼 사이클’도 큰 호재

현재 세계 반도체 산업은 이른바 ‘슈퍼 사이클’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초호황이다. 반도체 산업은 과거에는 PC 교체 수요에 따라 3~4년 정도의 경기 사이클을 그려왔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대 개막 이후 메모리 및 시스템 반도체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경기 사이클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더욱이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자율주행 자동차 등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반도체 수요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최소 몇 년은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반도체 수요 팽창은 반도체 장비 업계에도 크나큰 호재다. 반도체 칩 제조업체들이 생산설비를 최신형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수요도 덩달아 커지기 때문이다. 반도체 장비 중에서도 특히 신규 교체 수요가 많은 게 바로 식각 장비다. 바로 이 대목이 APTC의 성장성을 주목해야 할 이유다.

APTC는 조만간 기업공개를 할 예정이다. 최우형 사장은 APTC가 상장되면 3년 내에 시가총액 5조원짜리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기업들의 주가와 시가총액을 감안하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우형 사장이 말한다. “저는 앞으로 APTC를 종합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 성장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식각 장비 기술력을 더욱 고도화시켜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한편 다른 반도체 장비 기업들을 인수합병(M&A)하는 전략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경쟁자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 있습니다. 당연히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야 하겠죠.”



■ APTC 주요 경영 현황
APTC는 2016년 매출액 378억5,000만원, 영업이익 93억9,000만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매출액 800억원, 영업이익 270억여원 달성이 예상되고 있다. 2020년까지 연 매출액을 3,000억원 가까이 늘려나간다는 목표도 세워놓았다.
국내외 특허 등록·출원 건수는 2017년 3월 기준 총 71건이다. 그중 해외 특허 등록 건수는 25건이다. 현재 APTC가 생산하는 반도체 식각 장비는 모두 SK하이닉스에 공급되고 있으며, 양사는 기술 개발과 공정 도입 등에서 긴밀한 협력을 하고 있다. APTC는 국내외 유수의 반도체 칩 제조업체들을 대상으로 거래 확대를 추진 중이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김윤현 기자 unyon@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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