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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도피하는 청년들

최형욱 디지털미디어 부장

과거 해외 진출과 달리 생존 차원서

워킹홀리데이, 교환학생, NGO 등

다양한 방식으로 탈조선에 나서

일자리 정책 성공으로 전기 마련을

최형욱 디지털미디어 부장




“숨이 막혔어요. 도망치고 싶었어요.”

일년 전쯤이다. 미국 특파원 생활을 정리하면서 캐나다 밴프를 여행하는 호사를 누렸다. 캐내디언 로키는 기대했던 대로 장관이었다. 뜻밖의 광경은 밴프 주변의 식당이나 숙소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일하는 여러 한국 청년들이었다. 밴프는 세계적인 관광지이지만 오지이기도 했다. 우연찮게 한 청년 A씨와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왜 워킹홀리데이를 왔느냐고 물어봤다. 서른을 몇 년 앞둔 인생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A씨는 가고 싶었던 학과도 포기하고 부모님이 권하는 학과를 졸업했다. 단지 취업이 잘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A씨 역시 고등학교 때부터 청년실신(청년실업+신용불량)·헬조선·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7포 세대(연애·결혼·출산·내 집·인간관계·희망·가치 포기) 등 암울한 용어를 여러 차례 들었던 터였다. 하지만 인생의 꿈마저 포기했건만 원하는 직장을 갖기는 쉽지 않았다.

“어른들은 눈높이를 낮추고 유망 중소기업을 찾으라고 하죠. 하지만 저임금에다 야근, 휴일 근무를 해도 수당도 주지 않는 중소기업이 대부분이죠. 재수 없이 인간성 나쁜 사장이라도 만나면 온갖 비인간적인 대우나 받고요. 어른들은 다 알면서 무책임하게 말하죠.”

기약 없이 아르바이트와 취업 준비를 병행하는 생활은 갈수록 지겨웠다. 대한민국이 자신에게는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고등학교 때까지 사고 한 번 안 치고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대학도 ‘인 서울’에 성공했거든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억울했어요. 그러다 친구 하나가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것을 보다가 얼떨결에 와버렸어요.”

그는 현실도피, 여행, 힐링, 다양한 경험, 영어 배우기, 돈 벌기 가운데 무엇이 워킹홀리데이의 목적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눈 덮인 캐내디언 로키의 사진을 보는 순간 무조건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한다. 워킹홀리데이 9개월 차인 그는 한 달 뒤면 미국 전역을 여행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3개월 후면 미래가 불확실한 한국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답답해했다.

“주변에는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 돈을 벌면 물가가 싼 동남아로 가는 친구도 한 명 있어요. 몇 년째 그러고 있어요. 워킹홀리데이 자격이 안 되는 서른 살 이후는 대책도 없어요. 막연히 요가 강사나 여행전문가가 되면 큰돈은 못 벌어도 먹고살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A씨는 친구가 선택한 길이 너무 위험해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 기회가 있다면 해외에서 자리를 잡고 싶다고 했다. 이처럼 A씨처럼 ‘탈조선’을 통해 인생의 해결책을 찾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워킹홀리데이, 국제구호 NGO, 교환학생·봉사활동 등 해외로 나가는 방식도 다양하다.

물론 이는 글로벌 인재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기도 하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기회의 창이 닫히자 일부 젊은이들이 생존 차원에서 밖으로 나갔지만 해외에서도 방황하고 있다는 것이다. 1960·1970년대에 선진국 문물을 익혀 조국에 기여하기 위해서나 1990년대 배낭 세대처럼 시야를 넓히기 위한 목적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특단의 일자리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한 세대 청년들의 일생을 잃어버리게 된다”며 청년 일자리를 위한 예산 확충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물론 공공 부문 비대화, 막대한 재원 마련, 추가경정예산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반발 등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이 같은 한계에도 우리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청년들의 한숨을 덜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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