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움직임에 손해사정 업무와 콜센터 업무를 분사해 자회사에 위탁하고 있는 보험사들이 초긴장하고 있다. 국내 보험사들은 모두 손해사정 업무를 100% 자회사 형태로 갖고 있는데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현실화되면 위탁 업무의 절반 이상을 자회사가 아닌 외부 독립손해사정업체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서다. 이렇게 되면 고객정보 등 민감한 경영정보를 다른 외부 회사와 공유해야 하는데다 서비스 차별에 대한 고객불만 등의 논란이 나올 수 있다.
1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새 정부 들어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보험사마다 내부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보험업계의 한 임원은 “정부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한다고 하는데 손해사정 업무와 콜센터 업무도 포함될 수 있다”며 “만약 규제가 현실화되면 보험업계는 충격 그 자체”라고 말했다.
삼성이나 한화·교보 등 국내 대부분의 생명·손해보험사들은 100% 지분을 보유한 손해사정 자회사를 두고 있다. 적게는 1개 사에서 많게는 4개 사까지 손해사정 전문분야별로 자회사를 두고 있는 곳도 있을 정도로 스핀오프(분사) 형태가 일반화돼 있다. 특히 손보사들은 사람은 물론 자동차 등 대물 보험사고까지 처리해야 하는 만큼 생보사보다 거느린 자회사 수가 많다.
손보업계 1위인 삼성화재는 삼성화재서비스손해사정과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 등 2개의 손해사정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율은 각각 100%다. 지난해 말 기준 임직원 수도 각각 1,620명과 1,286명에 달한다. 삼성생명도 삼성생명서비스손해사정을 자회사 형태로 지분 99.78%를 보유하고 있다.
한화생명은 한화손해사정을, 교보생명은 케이씨에이손해사정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동부화재는 지난 1984년 동부자동차보험손해사정을 분사한 후 동부CAS손해사정·동부CSI손해사정·동부CNS손해사정 등 4개의 손해사정 자회사를 두고 있다. 손해사정 자회사는 모회사의 보험사고를 위탁받아 보험금 지급의 기초가 되는 손해액을 산출한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국내 전체 손해사정 업무의 70% 정도를 대형 보험사의 손해사정 자회사들이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대형 보험사들이 자회사에 손해사정 업무를 위탁함에 따라 영세한 손해사정 업체들의 일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대형 보험사의 손해사정 업무 위탁을 일감 몰아주기로 규제하려는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험업계에서는 시스템과 인력·네트워크, 정보보호, 서비스 역량 등을 고려할 때 체계화된 자회사에 맡기는 게 신속하고 정확한 보험금 지급이라는 측면에서 소비자에게 더 이롭다는 주장이다. 특히 고객정보 등은 민감한 경영정보인데 손해사정 업무를 영세 손해사정 업체에 위탁하면 기밀정보를 외부 업체와 공유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또한 대형 보험사가 손해사정 업무를 자회사가 아닌 영세 업체에 위탁하고 있지만 더 많이 맡기려고 해도 회사 브랜드 이미지 수준에 걸맞은 외부 업체를 찾기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체의 한 관계자는 “외부에 손해사정을 맡겼다가 문제가 생기면 민원은 모두 보험사로 향한다”며 “오히려 꼼꼼하지 않은 손해사정으로 보험금이 일부 계약자에게 과도하게 지급되면 전체 손해율 악화와 보험료 인상으로 줄줄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대형 보험사들이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줄 경우 자회사들이 계약자보다 모회사의 눈치를 더 보게 돼 보험금을 어떻게든 덜 주려 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보험업체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감독을 철저하게 받고 있기 때문에 기우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손해사정 업무의 자회사 위탁 규제는 수년째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해왔지만 새 정부 들어 다시 공론화되면서 보험업계가 또 하나의 짐을 짊어지게 됐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