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프린트는 기계음을 내면서 종이 위에 점을 찍는 도트프린터만 있었다. 마치 먹지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속도까지 느렸지만, 가격대가 높아 가정용으로 보급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이후 ‘레이저 프린터’, ‘잉크젯 프린터’로 발전한 데 이어 최근에는 ‘무한 잉크’를 탑재한 제품에다 컴퓨터의 구속에서 벗어나 모바일 기기에서 자유롭게 출력할 수 있는 제품, 더 나아가 클라우드 프린팅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도트 프린터가 먹지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었다면, 레이저 프린터는 종이에 토너를 붙여 열을 가하는 방식으로 활자를 고정했다. 글씨가 또렷하고 번지지 않는데다 속도도 빨라 대량 인쇄를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본격적으로 가정용 프린터의 대중화를 이끈 잉크젯 프린터는 잉크를 작게 만들어 뿌리는 방식이었다. 필름 대신 디지털로 사진들이 프린트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스마트폰·태블릿PC 등이 종이 문서를 대체하기 시작했고, 회사에서는 문서 대신 전자 결재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다. 프린터 기술은 정체됐고 시장은 내리막길로 들어선 듯 보였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프린터 시장은 멈추지 않고 흘러왔다”고 입을 모은다. 겉으로 보이지 않게 다양한 IT 기술이 접목되면서 진화했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경제성이 뛰어난 ‘무한잉크’ 탑재 제품부터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제품까지 스마트하면서도 시장 친화적인 프린터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장 먼저 ‘정품 무한 잉크’를 도입한 업체는 엡손(Epson)이다. 엡손은 2011년 자사의 잉크젯 프린터와 복합기에 공식적인 무한 잉크 장치를 탑재했다.
무한잉크 장치란 큰 잉크 통을 프린터 외부에 설치해 잉크 충전을 쉽게 하면서 무한 인쇄까지 가능한 장치다. 기존에도 비공식 무한 잉크 공급장치를 이용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출력 품질을 보장하지 못하는 데다 사후서비스(AS)에서도 불이익을 받아야 했다.
앱손의 무한 잉크젯 시리즈는 지난 4월 2,000만대 판매를 돌파했다. 그동안 프린터 업체들이 프린터 본체를 싸게 파는 대신 잉크를 비싸게 팔아왔지만 앱손은 ‘역발상’을 시도한 것이다. 이러한 앱손의 과감한 시도가 시장에 어필하자 경쟁사들도 유사한 제품을 내놓게 됐다. 2015년에는 브라더와 캐논이, 2016년에는 HP까지 정품 무한 리필 잉크젯을 출시했다.
프린터는 컴퓨터를 통해서만 출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컴퓨터 주변기기 중 하나로만 취급됐다. 하지만 컴퓨터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에서 자유롭게 출력할 수 있는 와이파이(Wi-Fi) 무선 연결 방식까지 등장하면서 사용 범위가 더욱 넓어지고 있다. 후지제록스가 선보인 와이파이 컬러 레이저 프린터 ‘도큐프린트(DocuPrint)’ 시리즈는 에어프린트(AirPrint) 기능을 적용해 1분에 최대 10페이지 출력(컬러 기준)이 가능하며, S-LED(셀프 스캐닝 발광다이오드)와 DELCIS(디지털 광제어 이미징 시스템) 기술도 탑재해 인쇄 품질까지 확보했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프린트할 수 있는 ‘클라우드 프린팅’도 주목받는다. 인터넷에 기반을 두고, 웹상에서 그때그때 주변 프린터를 통해 필요한 문서를 출력하는 방식이다. ‘아이프린트’, ‘이메일 프린트’ 등으로 구성된 엡손의 ‘커넥트 솔루션’이 이 같은 기능을 제공한다. 신도리코의 ‘유프린트(U-Print) 솔루션’, HP의 ‘이프린트(ePrint)’, 애플의 ‘에어프린팅’ 등도 대표적이다.
/권용민기자 minizz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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