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위협을 느끼면 털을 곤두세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 오하이오대학의 음악학자 데이비드 휴론은 “적 앞에서 가급적 몸을 크게 부풀리는 것은 동물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말한다. 물론 오늘날 사람의 몸에는 고양이만큼 털이 많지 않다. 소름이 돋는 것은 털이 많았던 옛 시절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털이 곤두서는 것은 먼저 추위에 대한 반응으로 시작된다. 털이 일어서면 몸을 둘러싼 주변에는 공기 단열층이 형성된다. 그러나 수백만년 전 어느 날, 추위에 털이 일어서 평소보다 몸이 커보이던 인간의 선조가 공격하려던 적을 놀라 달아나게 하면서 털을 세우는 것은 점점 유용한 자기방어기제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같은 생리학적 반응을 살펴보면, 두려울 때 오한이 드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소름이 돋고 털이 서는 것은 우선 온도의 문제다. 그리고 그 다음이 공포의 문제다. 휴론의 말에 따르면 사람은 공포에 질리면 척추가 떨리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일이 예상과 많이 어긋날 때, 또는 충격이나 경악과 같은 극한 감정을 느낄 때도 오한이 밀려든다. 심지어는 음악을 들을 때도 그렇다. 가수가 노래를 시작할 때나 음량이 변할 때 특히 그렇다.
워싱턴주립대학의 신경과학자 자크 팽크세프는 가수가 슬픈 음조로 노래를 부를 때 사람들이 오한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는 특정 음조의 음악이
타인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인간의 슬픈 울음소리를 모방한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 가설에 따르면 오한은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는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어떤 노래를 들었을 때 오한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이후에 그 부분을 듣고 또 들어도 계속에서 오한을 느끼게 된다. 내성이 생기지 않고 끊임없이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휴론은 이렇게 말한다. “뇌는 수천 번의 거짓 경보가 울려도 다 속아줍니다. 그 중 단 한 번이라도 진짜라면, 그런 상황에서 주인을 구해야 하니까요.”
그러므로 인간은 실제로는 안전하지만 거짓 경보가 울릴 때, 가령 공포영화를 볼 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휴론의 말이다. “뇌의 일부는 이렇게 말하죠. ‘세상에. 이대로 가다 죽겠어!’ 그러나 의식을 담당하는 뇌의 또 다른 일부는 ‘아냐, 괜찮아!’라고 말해요. 바로 이런 현상 때문에 공포영화를 볼 때 느끼는 오한은 기분좋은 오한이 되죠.”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