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 금융기관이 막대한 혈세를 퍼붓는 방식으로 동원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경영 상황이 좋지 않거나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금융공기업의 역할 중 하나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집도하면서 조 단위의 자금을 지원했지만 다시 부실이 일어나는 사례가 반복돼 국책 금융기관까지 동반 부실화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이다. 더욱이 금융공기업 간 역할도 갈수록 많이 겹쳐 과도한 경쟁만 유도한다는 지적도 있다.
KDB산업은행만 봐도 국책 금융기관의 상황을 알 수 있다. 지난 3월 산업은행은 지난해 3조원 규모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당시 4조원의 적자를 본 이래 최대 규모다. 원인은 과도하게 들어간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비용이다. 대우조선해양에서 3조5,000억원, 한진해운 9,000억원, STX계열에서 1조2,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입었다.
한국수출입은행도 지난해 대우조선 구조조정에 동원되면서 1조원 규모의 적자를 봤다. 이 때문에 수은은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주요 은행 가운데 자본건전성(BIS 비율)이 11.15%로 최악을 기록했다. 금융공기업을 통해 기업에 투입된 돈은 다시 혈세로 메우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위해 1조원의 현물 출자를 한 데 이어 한국은행도 대출 형태로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해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한국무역보험공사도 기업에 대한 보증을 늘리면서 기금배수가 80배에 육박한 상황이다. 이는 40배 수준인 일본에 비해 두 배나 높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 기업을 과다하게 지원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무보는 지난주 발표한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최하인 ‘E(매우 미흡) 등급’을 받았다. 무보의 한 관계자는 “경영을 못 했다는데 우리가 할 말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거절할 수 없는 정부의 지시를 따른 결과다.
혈세를 바탕으로 무차별적으로 지원되는 정책금융의 부작용도 상당하다. 무보는 2008년 중소 조선사 SLS조선의 수출 보증을 섰다가 1조원이 넘는 손실을 봤다. 수은과 무보는 로봇청소기 업체 모뉴엘의 무역금융 사기 대출에 휘말려 수천억원대의 손실을 봤다. 대우조선의 부실도 정부와 정치인, 산업은행 출신 낙하산이 임원으로 앉아 제대로 된 역할을 안 한 책임이 크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거시적 판단으로 국책은행을 무리하게 동원하는 일이 반복되고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손실은 어차피 혈세로 충당하기 때문에 책임소재도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수직적인 정부와 국책은행 간의 업무 관계를 수평적으로 바꾸고 시장을 통한 구조조정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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