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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실험대상인가 전위대인가] '억지춘향'식 정책 떠맡아 '빚폭탄' 부메랑...출구 없는 공기업

사업성 검토 못하고 국정과제 수행

정권 바뀌고 실패 땐 책임 떠안아

에너지 공기업 '자원외교' 후유증

광물자원公 완전자본잠식 빠지고

석유공사 등은 부채율 200% 넘어





광물자원공사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 해외 사업이라고는 유연탄 개발 사업이 전부였다. 다른 광종에 대한 개발 사업은 경험이 부족해 해외 광물개발회사의 프로젝트에 소수 지분을 투자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MB 정부가 자원 외교를 국정과제로 선정,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자 광물공사 역시 해외 사업에 뛰어들었다. 특히 정부가 광물공사에 대한 평가기준 중 ‘광물 자립기준’을 크게 늘리자 공사는 사업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하지 못한 채 닥치는 대로 해외 사업에 뛰어들었다. 광물공사는 결국 막대한 부채를 떠안은 상태에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해외 자원개발 감사 등을 받으면서 조직이 만신창이가 됐다. 이 같은 사정은 석유공사·가스공사 등 다른 에너지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공공기관들이 자율적 판단을 배제하고 정권의 주요 사업을 무리하게 떠맡아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부작용은 사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고졸 채용에 앞장서면서 금융공기업들은 억지춘향 식으로 고졸 채용을 확대했다. 심지어 연구기관들까지 고졸을 뽑아놓고 마땅히 활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박근혜 정부 때의 ‘경단녀(경력단절여성 채용 확대)’ 정책은 또 어떤가. 공공기관들은 고졸 채용을 줄이는 대신 경단녀 채용을 너도나도 늘렸다. 정부가 경영평가를 수단으로 강행했고 공공기관 역시 경쟁하듯 따랐다. 정권이 바뀐 뒤 경단녀 채용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있다. 성과연봉제도 마찬가지. 숱한 논란만 남긴 채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정부의 무리한 추진의 ‘홍위병’이 돼 추진한 사업들은 막대한 부채만 남긴 채 끝났다.

18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공공기관(시장형·준시장형) 35개 중 광물공사·대한석탄공사는 완전자본잠식에 빠졌고 부채비율 200% 이상의 공공기관은 한국석유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한국가스공사·한국철도공사·한국수자원공사 등 5개에 이른다. 이들 7개 부실 공공기관의 공통점은 정권 차원의 국정과제를 수행하면서 대규모 부채를 떠안았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의 원칙은 철저히 무시됐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1조를 보면 공공기관 자율경영과 책임경영 체제 확립은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 공공기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정권 초기 공공기관은 말 그대로 마루타일 뿐”이라면서 “정권이 바뀌면 책임은 고스란히 공공기관의 몫으로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부채 비율이 200%를 넘어선 수자원공사는 4대강 사업에 참여하면서 부실 공공기관으로 전락했다. 수공은 국가 하천을 관리하는 자격도 없었지만 정부는 규칙을 바꿔가며 수공을 4대강 사업에 참여시켰다. 수공은 16개 중 6개 보 건설에 참여했고 소요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특수채를 발행했다. MB 정부 5년간 수공의 특수채 발행 잔액은 이전과 비교해 3배 수준으로 늘어 2012년에는 107조원까지 늘었다. 특수채는 정부가 아닌 공공기관이 부채 상환 책임을 진다.

주식 시장에 상장돼 일반 주주들의 권리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공공기관 역시 정권에 휘둘리고 있다. 국내 주식 시장과 뉴욕증시에 상장돼 있는 한국전력이 대표적이다. 2008년부터 유가 상승 등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된 한전은 정부에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했지만 물가 상승 요인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거부됐다. 당시 민간 출신이었던 김중경 사장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까지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아 2013년까지 적자에 허덕여야 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지지 기반 지역에 고속도로를 건설하느라 바빠진다. 고속도로는 장기 계획에 따라 건설돼 정권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것처럼 보이지만 정권의 입맛에 따라 우선순위가 매번 바뀌는 것이 문제다.

다른 공공기관의 임원은 “국정과제로 공공기관이 떠맡은 사업들은 정부 부처에서 공식적인 문서로 지시하는 게 아니라 구두로만 독촉해 나중에 부처에서 책임질 일이 없게 만든다”며 “정부는 공공기관 평가 기준을 바꾸거나 관련법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공공기관들이 국정과제를 수행하게 유도하는데 정권이 바뀌고 사업이 실패하면 모든 책임은 공공기관에 돌아온다”고 말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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