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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오른 초대형 IB 시대] 확 바뀌는 자본시장...투자처 발굴·기업가치 평가가 성패 가른다

<1>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꿈꾸며

단기어음 발행업무로 안정적 자금조달 가능

모험자본 투자 늘어나며 일자리창출도 기대

수수료 인하 경쟁 대신 실력으로 승부 봐야





# 지난 2015년 미래에셋대우(006800) 최고경영진은 일본의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노무라증권 관계자들과 마주앉은 자리에서 일본 정부가 어떻게 IB 산업을 지원했는지 질문을 쏟아냈다. 노무라 측의 답변은 의외였다. “우리는 지원받지 않았다. 경쟁했을 뿐이다.”

정부가 초대형 IB의 탄생을 위해 전례 없이 규제를 완화하며 ‘한국판 골드만삭스’ 등장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초대형 IB는 기업에 투자해 수익을 얻고 이를 다시 기업에 재투자하는 자본시장의 생태계를 구축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경쟁 속에서 성장하는 토대 마련=초대형 IB는 국내 자본시장의 기능을 정상화시키는 데 우선 역할을 해야 한다. 기업이 대출 등으로 조달하는 자금과 달리 IB를 통한 자금조달은 수익을 기반으로 하는 투자의 영역이다. 특히 초대형 IB는 자본조달의 규제가 풀리는 만큼 신용등급이 높은 대기업보다는 리스크 관리를 통한 모험자본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투자는 중소기업 확충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와도 맥을 같이한다.

초대형 IB로 인가받는 증권사는 발행어음이라는 넉넉한 자금조달 수단을 갖추게 된다. 지금까지 은행은 예금을 받아 자유롭게 사업을 추진했지만 증권사는 고객 예탁금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증권사는 전자단기사채를 발행하거나 고객에게 돈을 받아 채권을 대신 운용해주는 환매조건부채권(RP), 파생상품인 주가연계증권(ELS) 등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그러나 만기가 1년 이내이고 손실 가능성이 높았다. 앞으로는 만기 1년이 보장되면서 비용이 적게 드는 발행어음을 증권사가 원하는 때 발행할 수 있게 됐다. 증권사들은 일반 은행 예금금리가 1%대 중반인 만큼 발행어음은 1%대 후반으로 발행해야 고객 유치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새로운 자금을 수혈한 초대형 IB에는 기업금융 50%, 부동산 30%, 기타 20%의 투자제한을 두고 있다. 부동산이나 주식 등에 대한 쏠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고객이 원하면 언제든지 돌려줄 수 있도록 전체 운용자산의 35%는 3개월 내에 유동화가 가능해야 한다.

초대형 IB의 경우 3~4%대 운용수익률을 얻을 만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찾는 경쟁이 시작됐다. 만기가 긴 벤처투자나 인수금융·사회간접자본을 비롯해 수익률이 높은 A등급 이하 회사채, 우량 비상장 주식, 메자닌(주식과 채권의 중간 성격) 등이 투자처로 거론된다. 기업신용공여(기업대출) 확대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도 투자 다변화를 위해 필요하다.

◇기업 구조조정의 한 축으로 성장해야=기업 구조조정 시장에서 국내 증권사의 위치는 애매하다. 특히 IB 업무의 꽃으로 불리는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국내 증권사들은 규모나 실력을 이유로 외면을 받았다. 2000~2015년 블룸버그 통계를 보면 4,000억원 이상 규모의 거래에서 재무자문은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 등 외국계 IB가 독식했고 2,000억원대 이하는 빅4(삼일·삼정·안진·한영) 회계법인이 맡았다. 올해 1·4분기 국내 M&A 시장 재무자문 실적을 보면 상위 5위 중 4개를 골드만삭스·크레디트스위스·로스차일드·모건스탠리가 차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 회계법인 임원은 “자문 수수료가 최소 40억원 이상인 대형 딜은 글로벌 IB를 원하고 중소형 딜도 신뢰성 측면에서 회계법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년간 외국계 IB가 자문한 기업들이 그렇게 높은 수익률을 거두지 못했음에도 기업들은 평판이라는 틀에 갇혀 글로벌 IB를 선택했다. 기업공개와 상장으로 이어지는 IPO 자문 역시 국내 증권사는 수수료 인하 경쟁으로 제 살 깎아먹기를 하고 있다. 2~3년 실사를 통해 인수금액의 8%라는 높은 수수료로 IPO를 추진하는 일본과 달리 국내 증권사의 IPO는 1%의 수수료를 더 깎아주면서 인수 내용보다는 단지 외형 확장에만 집착한다. 그나마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가 내는 청약 수수료를 최근 넷마블게임즈 상장 때 NH투자증권(005940) 등 국내 증권사가 처음으로 받았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법원의 판례도 공모 주관증권사의 법적 책임을 강화하면서 증권사가 제 몫의 수수료를 받을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정영채 NH투자증권 IB사업부 대표는 “증권사가 수수료 인하 경쟁으로 몰릴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당한 수수료를 받아야 자본시장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금융 당국은 국민연금 등이 해외 인프라 투자 시 초대형 IB와 함께 나서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기관투자가들은 아직 국내 증권사의 실력을 의심하고 있다.

초대형 IB는 실력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노무라증권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현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격 발견’ 능력을 키운 IB만이 살아남고 장기적으로는 시장친화적인 구조조정의 주체가 될 것”이라며 “이는 기업 상장 때 제대로 실사하면서 기업을 보는 눈을 키우고 손실을 보거나 설사 시장에서 밀려나더라도 과감한 투자 경험을 쌓아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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