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포털인 네이버와 1위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006800)가 26일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서로 매입하기로 하고 손을 맞잡은 것은 기술 기반 사업과 금융 콘텐츠 요소를 화학적으로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이겠다는 의지의 결과물이다. 또 국내 시장을 벗어나 글로벌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겠다는 두 회사의 전략적 판단도 담긴 결정이다.
네이버는 지난 1999년 인터넷 검색 사이트로 사업을 시작해 인공지능(AI)·자율주행차·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기술을 꾸준히 개발해왔다. 국내 업체 중에는 구글·IBM·아마존 등 글로벌 업체에 가장 근접한 기술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네이버가 AI 기술개발 과정에서 ‘롤모델’로 삼은 곳은 ‘알파고’로 유명한 구글보다 전 세계 e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기존 e커머스 플랫폼에 비서 엔진 스피커 등 AI 기술을 접목해 월마트를 능가하는 ‘유통공룡’으로 성장했다. 오는 7월 일본 시장에서 AI 비서 엔진 스피커 ‘웨이브’를 출시하는 네이버도 e커머스 시장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사용자가 AI 비서 엔진 스피커 등을 이용해 쇼핑하고 주문까지 하면 수수료와 광고수익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결제 등 금융 서비스다. 네이버는 다양한 금융 플랫폼과 콘텐츠를 보유한 미래에셋대우와 손을 잡음으로써 소비자들에게 더 편리한 시스템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네이버와 미래에셋대우는 이번 협업을 계기로 새로운 금융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미래에셋대우가 네이버의 AI·빅데이터 기술 등을 접목한 ‘로보어드바이저(RA)’ 상품이나 음성 비서 애플리케이션인 ‘네이버-클로바’를 통한 주식 투자가 첫 적용 사례가 될 듯하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알고리즘 기반의 투자운용 전략으로 사람의 개입을 줄이고 원칙에 따르는 시스템 투자가 가능하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평소 임직원들에게 AI 등의 기술과 결합한 ‘디지털 금융’을 강조해왔다.
미래에셋대우는 네이버와의 자사주 맞교환으로 자기자본을 기존 6조7,000억원(올해 3월 기준)에서 7조2,000억원으로 확충하는 효과까지 얻어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가는 길이 활짝 열렸다. 앞으로 종합투자계좌(IMA) 운용과 부동산 담보 신탁 업무 등의 자격을 얻기 위해 자기자본을 8조원까지 늘릴 계획이다.
두 회사가 손을 잡았지만 인터넷은행으로 나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박 회장은 증권·보험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도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간 격차로 수익을 얻는 은행업 진출에 부정적이다. 네이버의 한 관계자는 “미래에셋대우와 금융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의 신사업을 고민하는 단계지만 인터넷은행 사업에 진출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네이버와 미래에셋대우는 전사적 제휴를 계기로 본격적인 글로벌 사업 확장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자회사 라인의 모바일메신저는 전 세계적으로 월 사용자가 2억2,000만명에 달하는 플랫폼으로 컸고 미래에셋대우를 포함한 미래에셋그룹의 해외법인은 북남미·유럽·중국·동남아시아 등 9개국에 걸쳐 있다. 네이버는 미래 기술 기업을 발굴할 수 있는 안목을 갖췄고 미래에셋대우는 자금조달을 위한 투자 네트워크를 가진 만큼 글로벌 사업 확장을 위한 여건은 충분히 마련된 상황이다.
네이버와 미래에셋대우의 화학적 결합은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예고됐다. KDB대우증권 인수 확정으로 역대 최대 증권사를 만든 박 회장은 동원증권 재직 시절부터 꿈꿨던 벤처기업 투자를 위해 국내 주요 기업 창업주와의 만남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이해진 전 네이버 이사회 의장과 의기투합했다. 미래 유망산업에 투자하는 것만이 한국 경제가 살아날 길이라고 판단한 박 회장과 이 전 의장은 각각 500억원씩 자금을 내 1,000억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조성하기도 했다. 첫 작품을 만든 뒤 서로의 뜻을 확인한 두 사람은 마침내 상호 지분을 취득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박상진 네이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미래에셋대우는 국내 최대 증권사로 막대한 콘텐츠를 확보한데다 강력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춰 협업하기에 가장 좋은 파트너”라며 “앞으로 AI 등 첨단기술과 금융이 결합한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이겠다”고 자신했다.
/박시진·지민구기자 mingu@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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