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시장에 금리 인상 신호를 보냈던 한국은행도 고민이 깊어졌다. 유가 하락으로 국내 물가를 끌어내리면 금리를 인상할 유인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버티면 미국과 금리가 역전돼 대규모 외화가 국내 시장을 이탈할 수 있다.
이주열 총재는 이달 한은 창립 67주년 기념사에서 “수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투자도 호조를 보이면서 성장세가 확대되고 있다고 판단된다”며 “앞으로 경기회복세가 지속되고 경제상황이 보다 뚜렷이 개선될 경우에는 통화정책 완화 정도의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1년간 1.25%로 사상 최저를 유지했던 금리를 올리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던진 것이다.
하지만 금리 인상의 조건인 ‘수출 회복’에 대한 상황이 바뀌고 있다. 연초 이후 유가가 20%가량 하락하며 하반기 우리 수출 증가세가 둔화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수출 물량이 크게 늘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유가가 40달러 밑으로 내려가면 수출금액만 떨어져 수출액이 다시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이달 국제유가는 45달러선으로 지난해 6월(48달러)과 역전된 상황이다. 유가가 내리면 국내 소비자물가도 하방 압력을 받기 때문에 금리를 올릴 유인이 작아진다. 수출이 줄고 내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가뜩이나 위축된 민간소비를 더 얼어붙게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은이 금리를 현 수준으로 내버려둘 상황도 아니다. 미국은 지난해 12월에 이어 올해 3월과 6월 총 세 차례에 걸쳐 금리를 0.75%포인트 높였다. 이미 한미 간 기준금리 상단(1.25%)은 같아졌다. 미국은 올해 하반기 한 차례 더 금리를 올리고 자산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긴축 속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가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자금이 더 높은 금리를 찾아 국내 시장을 이탈할 우려도 있다.
한은으로서는 금리를 인상해 금융시장 안정을 꾀하느냐, 내수를 진작하느냐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한은은 내수를 살리냐, 금융시장을 안정화하냐의 선택이 있다”며 “내수부진과 금융시장 변동 가운데 어느 쪽이 휘발성이 큰지 잘 따져서 금리 정책을 짜야 한다”고 설명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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