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SK하이닉스 성공 신화의 주역’으로 꼽힌 김준호 사장을 ‘SK하이닉스시스템IC’의 사령탑에 앉힌 것은 ‘딥체인지(근본적 변화)’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라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의중이 담긴 인사라는 평가다. 김 사장은 최근 도시바 반도체 사업 부문 인수전에도 참여한 최 회장의 최측근으로 신성장동력이면서도 경쟁이 치열한 파운드리 사업을 키워 SK하이닉스의 재도약을 꾀하라는 최 회장의 특명을 맡게 됐다.
김 사장은 신일고·고려대 출신으로 최 회장과 고교·대학 동창으로 사법고시 패스 이후 부장검사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는 △SK 윤리경영실 부사장 △SK에너지 코퍼레이트센터 사장 △SK텔레콤 코퍼레이트센터 사장 △SK하이닉스 코퍼레이트센터 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2012년 하이닉스를 인수하자 그룹에서 SK하이닉스로 넘어가 SK하이닉스의 성공을 이끌었다.
최 회장은 신설법인에 사장급 인사를 맡김으로써 파운드리 사업에 힘을 몰아줬으며 동시에 김 사장의 빈자리인 경영지원총괄사장직에 최고운영책임자(COO)이면서 SK하이닉스의 D램 사업 부문을 급성장시킨 이석희 사업총괄 사장이 겸직하도록 해 변화와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노렸다는 평가다.
최 회장의 이런 용병술은 SK하이닉스시스템IC의 성공 여부가 향후 SK그룹의 인수합병(M&A)과 사업조정 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SK그룹은 올 들어서도 활발한 M&A를 진행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올 초 다우케미칼의 EAA 사업 부문을 인수했고 SKC는 합작사인 SKC Haas의 지분 인수 막바지 작업 중이다. 그룹 지주사인 SK㈜는 올 초 LG실트론을 인수하고 에스엠코어 지분 인수에도 참여했다.
사업 구조조정도 활발하다. SK네트웍스는 SK가스와 파인스트리트 자산운용에 LPG사업과 LPG 충전소를 양도했고 SK해운은 물적분할을 통해 SK마리타임과 신설법인 SK해운으로 분리됐다. 최근에는 SK케미칼이 지주사 전환을 선언하는 등 SK그룹은 말 그대로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SK하이닉스가 그룹의 간판인 만큼 이들 계열사에 던져주는 메시지가 작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SK그룹의 이번 인사로 최 회장의 딥체인지에도 ‘강드라이브’가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2015년 그룹의 딥체인지를 요구한 최 회장은 최근 확대경영회의에서 ‘사회와 함께하는 딥체인지 2.0’을 제시했다. 성과가 나고 있는 경영 측면에서 근본적인 변화는 계속하되 사회문제 해결에도 SK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한 것이다. 결국 변화와 혁신을 이끌었던 CEO를 선임해 반도체 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켜 구성원에게 ‘딥체인지 2.0’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 회장이 딥체인지 2.0을 통해 그룹 체질을 혁신적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터라 이를 추진하기 위해 앞으로도 최소한의 CEO 인사 및 조직 재정비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박성호·신희철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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